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파리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흘린 땀이
예상외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근대 올림픽이 1896년 시작된 이후 가장 성공적인 대회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은 미·소 간 냉전 격화로 반쪽짜리
대회로 끝나버렸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제재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 국가 대부분이 모스크바 대회를 보이콧하였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4년 후에는 공산권이 LA 올림픽에 불참한 것이다.
88서울올림픽에는 동서 양 진영의 국가들이 함께 참가하여 명실공히 지구촌
화합의 제전을 만들었다. 공산권의 종주국인 소련이 미수교국인 한국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고,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도 뒤따랐다. 중국은 이미 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였고,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였기에 당연히
서울 올림픽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1980년 시작한 폴란드의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바웬사가 주도한 솔리대리티
(자유노조 연대)가 국민적 지지를 얻어 89년 5월 공산정권을 무너뜨렸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선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폴란드의 민주화 후 반년 안에 동유럽 공산권의 민주화가 모두 이루어졌다.
헝가리, 동독,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1991년에는 소연방 자체도 해체되었다.
한국은 1983년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 후 당시 이범석 외무장관이 소련,
중국과도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북방정책을 선언하였고, 노태우 대통령도
1988년 취임 후 7.7 선언을 통해 이를 확인하였다.
1987년 6월 항쟁 후 민주적 선거에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88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전 세계에 자랑했다. 올림픽 경기 상황과 함께
한국 사회의 모습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북한의 선전 선동으로 거지들이
우글거린다던 한국의 발전상에 유럽 공산권이 깜짝 놀랐다. 전쟁의 폐허였던
한국이 자신들보다 앞선 걸 보고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동서 냉전체제 해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87년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였고,
88 올림픽 후에는 89년 평양세계청소년축전을 열었다. 민항기를 전세 내어
아프리카 선수들까지 대거 초청하느라 북한 경제는 멍이 들었다. 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격이다. 북한 경제는 추락해 버렸다. 한국이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개발과 함께 신도시 아파트 건설 같은 수익사업을 통해 크게 흑자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역대 올림픽 개최국이 한국만큼 흑자경영을 한 예는 없다.
국내적 차원에서도 88올림픽은 한국 사회의 격을 높이는 전기가 되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변화다. 한강 변을 따라 건설한 올림픽 대로는 김포공항에서
잠실까지 단숨에 이동하는 고속교통망이 되었다. 지하철 2,3,4호선 개통으로
세계적 도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마이카시대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이다.
잡초투성이였던 한강의 고수부지를 정비하여 공원으로 만들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강물과 어울린 환경에서 삶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파리의 센 강 양안의 인간
친화적인 조경에 비견할 만하다. 가로등이 이어지는 한강 변의 경치는 도심의
고층 스카이라인과 어울려 환상적인 그림이 되었다.
잠실종합운동장을 비롯한 스포츠 인프라도 건설하였다. 스포츠 시설의 확충은
엘리트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의 건강을 크게 진작시켰다. 한국 청년들이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건장해지고 자신감도 커졌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해충인 파리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모기도 줄었다.
바로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하수도 정비와 종말처리장 완성으로 번식할 장소를
원천적으로 없앤 결과다. 화장실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옛날엔 좋은 음식점의
화장실에도 냄새가 진동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고속도로나 공원의 화장실도
정말 깨끗해졌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88올림픽 효과는 매우 크다. 손기정 선수가 성화봉을 들고
잠실 경기장을 돌면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되살렸다. 식민통치와 6.25전쟁을
겪은 최빈국에서 피땀 흘려 경제를 일으키고, 베트남과 중동진출을 거치면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났다. 88올림픽이야말로 그동안의 경제성장을
시민의식의 성숙으로 잇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80년대 소위 3저 현상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이룬 결과 쌓인 달러 과잉을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의 두려움에서 지속되던
야간 통행금지도 이미 1982년 1월 폐지되었다. 옛날에 흔했던 소매치기도
없어졌다. 택배 물건을 문 앞에 던져 놓아도 누가 집어 가지 않는다. 치안, 건강,
근로여건, 공공서비스가 크게 개선되었다. 해외 사정에 어두웠던 한국 사회가
완전 개방사회가 되었다. 국제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다.
자유가 넘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외형적 변화가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여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성장. 철강, 조선, 전자, 자동차, IT, 화학 등 생산 실적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의식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면 진정한
선진국이라 하기 어렵다.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국다운 의식이 넘쳐야 한다.
의미 있는 기준은 다양성, 관용, 넓은 마음이 아닐까? 자유로운 사회는 건전한
비판과 경쟁을 환영하고 그래서 역동적이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상식과 합리주의가 통용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나무랄 데 없는
선진국이 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데가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떼쓰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벗어난 논쟁은 떼쓰기의 연장일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데가 정치 분야다. 매일 이어지는 정치 뉴스를 보면 짜증이 난다.
북한의 독재체제에 우호적인 종북주사파들이 북한 정권의 떼쓰기를 본받고 있다.
국익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파당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저차원의 다툼에 빠진
정치권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나는 억지, 진실을 외면하는 억지,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기본을
무시하려는 억지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파리와 해충이 사라지는 외형적 선진화가 되었으니, 이제 인간 해충들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
2024-08-10
김 석 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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