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우리 문화재 200

조선 임금 초상화 모신 경복궁 선원전 편액, 100년 만에 日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됐던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글씨를 써서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이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편액을 환수했다고 3일 밝혔다. 편액 실물은  27일 오전 10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조선은 충과 효를 통치체제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친히 분향, 참배 등의 의례를 행하는 선원전은  궁궐 내에서도 위계가 높은 전각이었다. 경복궁 선원전은 1444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됐고, 1695년 창덕궁에 선원전..

최고권력자도 탐한 명화...[이은화의 미술시간]

빈센트 반 고흐는 겨울을 주제로 한 그림을 평생 몇 점 그리지 않았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풍경화는 봄, 여름, 가을 경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소장한 ‘눈 덮인 풍경’(1888년·사진)은 어딘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888년 2월, 프랑스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직후였다.  남프랑스의 따뜻한 색감과 강렬한 햇빛을 쫓아왔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었다.  실망스러운 날씨였지만 화가는 이내 붓을 꺼내 들었다. 눈 덮인 넓은 들판은 단조로운  배경처럼 보이지만 갈색, 녹색, 파란색의 두껍고 독특한 붓질 덕분에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화면 왼쪽에서 시작돼 눈 덮인 산을 향해 이어지는 흙길에는 걸어가는 남자와 개의 뒷모습이  작게 그려..

"집안 어르신 소장품…" 진품명품 최고가 찍은 '이 청자' 뭐길래

국내 고미술품의 가치를 분석하는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서  역대 최고 감정가를 기록한 고려청자가 등장했다. 약 44㎝ 높이에 뚜껑까지 갖춰  깨끗한 보존 상태를 자랑한 ‘청자 음각 연화문 매병’이다. 22일 설날 특집으로 방송된 ‘TV쇼 진품명품’에는 국보급 수준의 진품 고려청자가  등장했다. 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매병’ 형태로  화려한 비색(翡色)에 뚜껑까지 온전하게 보관된 모습이었다. 의뢰인은  “박물관을 준비 중인 집안 어르신의 소장품”이라며 “뚜껑이 보존된 청자의 가치와  문양의 의미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김준영 도자기 감정위원은 “틀림없이 고려시대에서 만든 작품이다. 높이는 대략  44㎝ 정도의 대형 매병이고 뚜껑이 함께 있어 아주 귀한..

[국보감상] 국보 제178호,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조선시대 전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편병으로 배 부분이 앞·뒤 양면으로 납작한 편평한 모양이며, 크기는 높이 22.6㎝, 입지름 4.5㎝, 밑지름 8.7㎝이다. 백토을 두껍게 입히고 조화수법으로 무늬를 그린 위에 연한 청색의 투명한 유약을  칠하였다. 앞·뒷면과 옆면에 서로 다른 무늬와 위로 향한 두 마리의 물고기를  생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나타냈다. 물고기 무늬는 분청사기 조화수법의 특징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데 조화수법이란 백토로 분장한 그릇에 선으로 음각의 무늬를 새겨넣고 백토를 긁어내어 하얀선으로 된 문양을 만드는 기법이다. 양 옆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위와 중간에 4엽 모란무늬을 새기고, 배경을 긁어냈으며 아랫부분에는 파초를 넣었다. 바탕흙은 회청색으로 백토분장이 된 곳과 분장이 안 된 곳과의 대..

"일본 배척한 폭도"…日 헌병이 가져간 의병 문서 돌아왔다

일본 땅을 떠돌던 구한말 의병들의 문서와 편지가 10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국내로 들여온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을 공개했다.    의병들이 남긴 기록은 두 개의 두루마리에 담겼다. 재단은 일제 헌병 경찰이었던 아쿠타가와 나가하루(芥川長治)가 문서를 수집한 뒤 1939년 두루마리 형태로  묶었다고 보고 있다. 아쿠타가와는 각 두루마리에 ‘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檄文)’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쿠타가와가 의병장 유인석(1842~1915)이 시문집을 만드는 현장을 급습한 뒤 '다수의 불온 문서를 압수했다'고 기록한 부분도 있다. 재단은 "(아..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첫 공개… 공간 제약 없이 시간 측정

학계 알려진 바 없는 희귀 유물 - ‘1890년 상직현 제작’ 한문 표기 문화재청, 美서 경매 통해 입수 - 고궁박물관, 19일부터 일반 전시  휴대용 해시계’라는 학계에도 알려진 바 없는 희귀유물이 경매를 통해  미국에서 입수돼 국내 첫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영원구(日影圓球·사진)’를 공개했다. 동과 철 재질로 된 휴대용 해시계로  높이 23.8㎝, 구체 지름 11.2㎝ 크기다. 이전에 없던 희귀 유물이다. 그런 만큼 어찌하다 해외로 나갔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주둔 미군장교  사망 이후 그의 유물로 유족으로부터 이를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단은 지난해 말 이  유물의 경매 출품 정보..

검푸른 녹 제거하자 수천년 전 한반도 생활상

가운데 있는 세로 방향의 무늬 띠로 인해 좌우로 나뉜 공간에 자세히 보면 그림들이 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고 발가벗은 채로 밭을 일구는 남자, 괭이를 치켜든 사람,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밭을 가꾸어 수확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한 듯싶다. 뒷면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는데,  여기엔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끝에 새가 한 마리씩 앉은 그림이 있다. 길이 13.5㎝에 불과한 이 청동유물은 기원전 4세기 청동기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문화를 표현한 그림이 있다고 해서 ‘농경문청동기’로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수된 것은 1969년 8월 5일. 대전의 상인이 고물상에게 구입했던 게 서울  상인을 거쳐 당시 돈 2만8000원에 넘어왔다. ..

♧어딘가 어색해서 더 끌리네, 순백 달항아리

청자는 조선 초기가 되면 표면에 백토를 발라 만드는 분청사기로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생산됐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더 높은 온도(1200도 이상)에서  구워낸 희고 단단한 백자가 조선시대를 특징짓는 자기가 됐다. 조선 백자는 단아하고 잘생긴 형태와 담백하고 너그러운 곡선을 지녔다.  같은 흰색이라도 순백, 유백, 회백, 설백, 청백 등으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조선은 백자를 왕실 도자기로 선택하고, 유교적 이상을 담은 백자를 만들기 위해  1467~1469년 경기도 광주에 관요를 세웠다. 그릇 굽 안바닥에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좌(左)’ ‘우(右)’ 등의 글씨를 새겨 관리하기도 했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일제시대 최초 발굴된 '신라 금관'의 주인공은?

그냥 척 봐도 국보다. 휘황찬란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테두리 위에 한자 날 출(出)자처럼 생긴 장식을 세웠다. 양쪽으로 사슴뿔 같은 장식도 있다. 이 장식에 굽은 옥(곡옥, 曲玉)과 동글납작한 금판 구슬(영락, 瓔珞)을 규칙적으로 배열했다. 테두리 앞면에 길게 늘어뜨린 두 금줄이 있는데 이 장식 끝에 달린 초록색 옥엔 금빛 모자까지 씌웠다. 형태건, 색상의 조화건 신라 금관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이 금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발견됐다. 어린 아이들이 작은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본 일본 경찰은 그 구슬들이 나온 곳으로 갔다가 주택 확장공사 현장에서 나뒹구는 ‘왕릉급’ 유물들을 목격했다.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정식 조사에 착수한 결과 거대한 고분에서 순금 제품과 토기류, 청동기류, 옥류, 무기..

말 탄 두 사람, 어린 왕족 사후세계 길잡이였나

역시 교과서에서 만났을 국보다. 기마인물형(말 탄 사람 모양) 토기 2점은 쌍으로  출토됐는데, 사람과 말의 차림새에서 신분 차이가 보여 각각 주인상과  하인상으로 이해됐다. 주인상은 머리에 관모(冠帽)를 쓰고 갑옷을 걸친 게 귀족으로 보인다. 오른쪽 허리춤에  칼을 차고 늠름하게 말을 타고 있다. 말에도 안장, 재갈, 발걸이 등이 완벽하게 표현됐고 말띠꾸미개[운주(雲珠)]와 말띠드리개[행엽(杏葉)]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인상은 머리에 상투를 틀어올려 건(巾)을 썼고, 입은 옷도 장식 없이 소박하다.  올라탄 말은 크기가 작고, 말갖춤은 주인상의 것과 비슷하지만 말띠드리개 같은 장식이 없이 단순하다. 출토 당시엔 하인상이 앞에 있고 주인상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