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있는 세로 방향의 무늬 띠로 인해 좌우로 나뉜 공간에 자세히 보면 그림들이 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고 발가벗은 채로 밭을 일구는
남자, 괭이를 치켜든 사람,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밭을 가꾸어 수확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한 듯싶다. 뒷면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는데,
여기엔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끝에 새가 한 마리씩 앉은 그림이 있다.
길이 13.5㎝에 불과한 이 청동유물은 기원전 4세기 청동기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문화를 표현한 그림이 있다고 해서 ‘농경문청동기’로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수된 것은 1969년 8월 5일. 대전의 상인이 고물상에게 구입했던 게 서울
상인을 거쳐 당시 돈 2만8000원에 넘어왔다. 정확한 출토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대전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작은 크기에 아랫부분은 없어졌고 전체적으로 녹이 심해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는 기하학적인 무늬 일부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보존처리 과정에서 겉면 녹을 하나둘 제거하자 앞면과 뒷면에서 나뭇가지 위의 새, 농경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여기 묘사된 밭이나 격자무늬 토기 등은 실제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당대의 생업과 신앙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청동기다.
출토지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한계에도 2014년 보물로 지정된 이유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든 합금(合金)이다. 구리는 비교적 자연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고
매장량도 풍부한 반면, 성질이 물러 형태가 쉽게 변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석 등을 섞어 강도를 높인 게 청동이다.
청동의 제련(製鍊)은 당시로선 쉽지 않은 기술이었고, 그 때문에 이를 거푸집에 붓고 식혀 다듬어
만드는 청동기는 귀한 재물이었다. 오랜 세월 탓에 녹슬어 검푸른 빛을 띠지만 갓 만들어진
청동기는 광택이 있는 금색에 가깝다. 햇빛 아래 반짝반짝 황금빛을 뿜었을 청동기들은 당대
지배자에게 위엄과 권위를 더해줬을 것이다. ‘문명’이란 게 막 시작하던 시기의 생활과
신앙이 수천년을 건너뛴 이 작은 유물을 통해 생생히 전해진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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