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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어색해서 더 끌리네, 순백 달항아리

김정웅 2024. 7. 27. 09:47

백자 달항아리.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청자는 조선 초기가 되면 표면에 백토를 발라 만드는 분청사기로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생산됐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더 높은 온도(1200도 이상)에서 
구워낸 희고 단단한 백자가 조선시대를 특징짓는 자기가 됐다.

조선 백자는 단아하고 잘생긴 형태와 담백하고 너그러운 곡선을 지녔다. 
같은 흰색이라도 순백, 유백, 회백, 설백, 청백 등으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조선은 백자를 왕실 도자기로 선택하고, 유교적 이상을 담은 백자를 만들기 위해 
1467~1469년 경기도 광주에 관요를 세웠다. 그릇 굽 안바닥에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좌(左)’ ‘우(右)’ 등의 글씨를 새겨 관리하기도 했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수준 높은 순백의 백자를 제작하게 됐다. 숙종(재위 1674~1720) 
대에 이르면 관요에서 일하던 장인들이 일부 백자를 구워 팔 수도 있었다. 
양반 가문에선 제사를 위한 제기 용도로, 문인들에겐 
문방구로도 백자의 인기가 높았다.

전시에선 백자 달항아리가 선보인다. 달항아리는 조선 17세기 후반 무렵에 제작되기 
시작해 주로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사리 가마는 18세기 최상급의 순백자와 청화백자를 생산한 가마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달항아리라 하면 높이 40㎝가 넘고 몸체 위와 아래를 각각 따로 만든 뒤 
이어 붙인 백자를 통칭한다. 이 때문에 좌우가 대칭되지 않고 약간 이지러진 모습을 
보인다. 굽의 지름이 입구의 지름보다 좁아 다소 불안정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면이 실제 달을 연상시키는 매력이 있다. 예전엔 ‘백자대호(白磁大壺)’라는 
멋대가리 없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20세기 들어 붙여진 달항아리가 표준 용어로 
정착했다. 우람한 형태와 풍만한 곡선, 표면의 부드러운 흰색이 어우러져 현대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며 사랑받는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