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척 봐도 국보다. 휘황찬란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테두리 위에 한자 날 출(出)자처럼 생긴
장식을 세웠다. 양쪽으로 사슴뿔 같은 장식도 있다. 이 장식에 굽은 옥(곡옥, 曲玉)과 동글납작한
금판 구슬(영락, 瓔珞)을 규칙적으로 배열했다. 테두리 앞면에 길게 늘어뜨린 두 금줄이 있는데
이 장식 끝에 달린 초록색 옥엔 금빛 모자까지 씌웠다. 형태건, 색상의 조화건
신라 금관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이 금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발견됐다. 어린 아이들이 작은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본 일본 경찰은 그 구슬들이 나온 곳으로 갔다가 주택 확장공사 현장에서 나뒹구는 ‘왕릉급’
유물들을 목격했다.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정식 조사에 착수한 결과 거대한 고분에서
순금 제품과 토기류, 청동기류, 옥류, 무기류 등 약 1만여 점이 출토됐다.
그중 하나가 신라 금관이었다. 훗날 이 무덤은 신라 금관의 최초 발견을 기념해 금관총으로
이름 붙여졌다. 경주 고분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여섯 개의 순금제 금관이 발굴되었는데,
이 금관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있다. 신라 왕(마립간)의 위세가 절정에 달했던 5~6세기로
추정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대한 무덤과 금관, 금 장신구들을 통해 신라 왕실은
저승에서도 살아 생전의 지위와 권력를 누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금관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금관총 발굴 90여 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같은 무덤에서
나온 칼을 보존처리하다가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를 찾아냈다. 그동안
금관총으로 불렸던 무덤에 이사지왕이 묻혔던 것으로 해석됐다.
문제는 신라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이사지왕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름만 다를 뿐 역사 기록에 전하는 신라 왕 56명 중 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금관총이 만들어진 시기 신라에선 절대권력자뿐 아니라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왕으로 불렸다고 한다. 화려한 황금 장신구를 지닌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금관총 발견 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학계의 흥미로운 논점으로 남아 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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