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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비취색... 불과 흙의 조화 '상감청자'

김정웅 2024. 7. 21. 00:19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국보 98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 10세기 무렵이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 수도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지만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를 생산했고, 제작 기술도 더욱 정교해졌다.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한 고려자기는 12세기에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급 기물은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몄고,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과 기와·타일 같은 
건축자재도 청자로 만들게 됐다. 특히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翡色) 
청자’를 완성하고 표면에 서로 다른 흙을 집어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상감(象嵌)’
기법을 개발함으로써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달리 고려청자가 
시대·국적을 불문하고 칭송받는 게 아니다.

상감청자는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 부분을 흰 흙이나 붉은 흙으로 메워서 
청자 유약을 입혀 굽는다. 이렇게 하면 흰 흙은 백색 무늬로, 붉은 흙은 검은색 무늬로 
나타난다. 본바탕에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청자의 상감 기법은 같은 시대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入絲)기법과 기술적으로 비슷하다. 고려 공예 기술의 
독창성과 일관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국보)는 높이 19.7㎝다. 양쪽에 달린 
동물 모양의 손잡이기 있는데, 이전 시대에 만들어졌던 동기(銅器, 구리에 주석을 
섞어 만든 청동기물) 형태를 따랐다. 표면 무늬는 선상감으로 윤곽선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잎을 세밀하게 상감했다. 상감된 모란무늬는 크고 시원스러운 
그릇 모양과 잘 어울린다.

고려의 왕과 신하들은 모란을 대상으로 시 짓기를 즐겼다고 한다. 
문신 이규보(1168~1241)도 궁궐 안 산호정에 모란이 피면 시를 읊는 사람이 많다고 
기록을 남겼다. 모란무늬가 돋보이는 이 항아리는 안정감 있는 형태와 차분한 
광택이 도는 유색이 조화를 이뤄 품격을 자아낸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