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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잘 못 알고 있는 이승만의 서울 탈출

김정웅 2021. 1. 16. 19:53

건국 대통령 이승만 

흔히 이승만 대통령이 6.25때 '서울은 안전하니 생업에 종사하라'고 방송하고는 

본인은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탈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강교를 끊었다'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건 100% 날조인데, 심지어 이승만에 대해 연구했다는 이들도 이 문제에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본다.

1. 이승만은 6.25가 발발한 당일 밤 10시에 대전으로 정부 이전을 결심하고 

   무쵸 대사에게 통보했다.

 이 사실은 미 대사관 기록에 분명히 나온다.

이승만이 당일 밤 대전 이동을 결심한 것은 100% 외교적 전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날 아침 무초 대사와 대화에서 이승만은 미국의 신속한 탄약과 무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무초 대사는 '지금으로서는 미군의 지원 없이도 

한국 군이 잘 버티고 있다'라고 대답했기 때문.

그런데 6.25 당일 오후에는 북한의 YAK전투기가 김포 비행장과 용산역을 폭격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무초 대사를 밤 10시에 다시 불렀다. 

이승만은 무초 대사와 마주한 그 자리에서 '만일 내가 북한군에 포로가 된다면 한국과 

미국은 대단히 불행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가장 크게 놀란 이는 배석한 신성모 국무총리였다. 이승만의 이 말은

'내가 북한 군에 포로가 되면 한국 정부는 항복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였기 때문.

아마도 이승만은 자신이 체포되면 전쟁을 종식시켜서 국민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이만 저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은 이어서 '이를 위해 대전으로 정부 인사들과 내려 가겠다. 이는 나의 탈출이 

아니라, 정부를 옮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6.25 당일 밤 10시 상황이었다.

이에 무초 대사가 한국군은 서울을 사수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그는 '저는 서울에 남겠다. 남아서 미국 시민들을 피난시키겠다'고 맞섰다. 

그러자 이승만은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진작 미국이 F51등, 한국에 무기 지원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들어 주지 않다가 이 지경이 된거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북한군에게 잡힐 경우, 항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이를 피해 대통령이 대전으로 

내려간다면 미 대사 무초로서는 서울에 남은 미국 시민들의 피난과 안전 문제를 자기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2. 무초 대사는 이승만과 면담 후 신성모 총리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고 

신성모 총리는 '나하고도 의논한 바가 없어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초로서는 걱정이 이만 저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다음 날인 6월26일, 새벽 4시에 무초 대사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의 F51 폭격기와 비주카포, 36문의 105mm곡사포, 75mm 대전차포 등의 

지원이 있어여 한다고 재촉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기가 막힌 말을 남겼다.
'내가 직접 맥아더와 통화하려 했는데 통화가 안되더라'

무초는 다급하게 본국에 연락했고 맥아더는 당일,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10명을 수원에서 

일본으로 실어 나른 후, 1시간 정도 F51기 훈련을 시킨 후 이 전투기들을 몰고 서울로 

돌려보냈다. 그 밖에 본격적인 무기 공수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3.  6.27일 새벽 4시, 이승만은 신성모 총리와 주변 정부인사들의 

    권유에 의해 대전으로 이동하게 된다.  

한강 다리는 그 다음 날인 28일 새벽에 이승만의 의사를 묻지 않고 채병덕 장군의 결정으로 

폭파됐다. 이승만은 이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대전에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미국 대사와 공사의 권유였다. 

이승만은 차라리 대전에서 죽겠다고 버텼다.

미국이 이승만의 부산 피난을 권고한 것은 맥아더가 수원에서 시찰 중 북한의 공습을 받은 바, 

대전도 함락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고, 만일 이승만이 북한군에 잡히면 한국은 전쟁을 

포기할 거라는 이승만의 배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서울 탈출은 미국에게 자신이 포로로 잡히면 전쟁은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경고하며, 미국의 신속하고 대량적인 무기 지원과 참전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외교적 

행위였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참고 : 미대사관 기록, '전쟁 지도자로서 이승만/ 온창일' 외]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