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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혁 경찰 총경'과 '김영환 공군 대령' 이야기

김정웅 2024. 12. 17. 00:15

 

지리산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군인과 경찰 모두 공이 컸지만 잊어서는 안될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차일혁 총경이고 한 분은 김영환 공군 대령입니다. 
그 두분 이야기를 전합니다.

●차일혁 총경(전투경찰 연대장) 

차일혁은 1920년 전북 김제 군에서 태어나 홍성공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항포 군관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독립 운동에 투신하다 해방 후 전투 경찰에 들어가 지리산  
빨치산 토벌 군에 배속되어 전투 경찰 제 2연대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차일혁 총경은 1951년 화엄사와 연곡사. 천은사 등 천년 사찰이 있는 구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상부로부터 "화엄사가 빨치산의 소굴이다.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차일혁 연대장은 거부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대웅전 문짝만 하나 떼내어 대웅전 앞마당에서 
태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부하들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면 사형 감인데 어떻게 거부하느냐고 망설였습니다.
차일혁 총경은 "죽어도 내가 죽는 것이니, 자네들은 내 말만 듣게, 이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足)하지만, 이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이 걸린다. 
내 손으로는 절대 태울 수 없다" 라고 단호히 지시하며 대웅전 문짝 하나만 태우고 
화엄사를 다 태웠다고 상부에 보고하였습니다.

차일혁 총경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나중에 알려졌지만, 오히려 그 용기를 가상하게 
여긴 상부에서 없었던 일로 덮어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에 화엄사 주지 스님의 
불사로 차일혁 경찰 연대장의 공덕 비를 화엄사 경내에 세우고 그 공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분 덕분에 오늘의 우리는 천년 고찰 화엄사를 관광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환 공군 대령 

김영환 공군 대령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병으로 조종사 
교육을 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군사 영어 학교를 나와 국군 창설 멤버로 공군 창설에 
기여한 바가 큽니다. 김영환 대령은 1951년 11월에 경남 사천 비행 단에서 
편대장을 하고 있었는데, 낙동강 전선에서 탈출하던 인민군 패잔병들이 
해인사에 몰려 있으니,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김영환 대령은 일단 명령을 접수하고 폭격기 편대를 인솔하여 가야산으로 떠났습니다. 
가야산으로 가면서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팔만대장경은 우리의 국보라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폭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민군도 불사르지 않는 해인사를 우리가 왜 폭격으로 불태워야 하는가?" 라는 죄책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실고 온 폭탄은 모두 해인사 뒷산 인민군 보급 소에 
투하 하고 해인사는 폭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사천 비행장으로 복귀하였습니다. 당연히 비행 단장의 호된 질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군 비행 단장은 갓뎀을 외치며, 군법에 회부 시키겠다고 길길이 뛰었습니다. 
그러나 김영환 대령은 모든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그 해인사에는 우리 조상의 얼이 숨 쉬는 팔만대장경이라는국보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찌 후손인 제가 그것을 폭격할 수 있겠습니까. 영국은 인도를 다 준다 해도 세익스피어 한 
사람과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엮어서 준대도 바꾸지 않을 
귀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있던 미군 비행 단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귀 관은 진정한 코리아의 
애국자입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소!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지금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고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해인사에는 김영환 대령의 공덕 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분 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일혁 총경은 공주 경찰 서장을 하다 1958년에 사망하고 김영환 대령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두 분은 사후에 각각 1계급 씩 추서되어 
차 총경은 경무관으로 김대령은 준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김영환 대령은 6.25 때 자기 형수의 빨간 쉐타를 잘라 공군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만들어 착용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