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우리 문화재

세종대왕 아들 ‘태실 유물’ 부산 시민 품으로

김정웅 2021. 7. 7. 07:50

부산 남구 거주 이상민 씨 의창군 태지석·안태용 분청사기
일제강점기 종적 감춘 유물들 부산박물관에 24점 기증
15세기 조선 장태문화 확인

 

이상민 씨가 부산박물관에 기증한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 부산박물관 제공
세종의 왕자 의창군 태지석 탁본. 부산박물관 제공
이상민 씨가 부산박물관에 기증한 청자 모음. 부산박물관 제공

세종대왕 아들(왕자)의 태실(胎室) 유물이 부산 시민 품에 안겼다. 태실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 등 

왕손이 태어나면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정해 태(胎)를 묻었던 곳을 말한다.

부산박물관은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이상민 씨로부터 태를 항아리에 넣어 매장하는 15세기 조선 전기 

장태문화(藏胎文化)를 알 수 있는 조선 세종대 태실 유물 2점 등 모두 24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6일 밝혔다. 이 씨는 2019년에도 부산박물관에 4점의 유물을 기증한 바 있다.

부산박물관이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 중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은 ‘세종의 왕자 의창군(義昌君) 태지석

(胎誌石)’과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태를 안치하는 데 사용한다는 의미) 분청사기(粉靑沙器)’이다. 

이 유물 2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의창군은 세종의 열 번째 아들

(서자로는 세 번째)로 세종과 신빈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5년에 의창군으로 

봉해졌으며, 1460년에 사망했다.

조선 왕실은 태실이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전국 팔도의 풍수 좋은 명당에 태실을 두고 소중하게 

관리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국에 산재한 명당 터를 확보하고 조선 왕실과 백성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려는 의도에서 특별한 기준 없이 전국 팔도 명당에 있던 태실을 서울 근교로 

옮겨와 서삼릉에 일괄적으로 모아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실의 유물이 교란되고 

중요한 문화재였던 태항아리가 상당수 도굴됐다.

세종의 왕자 18명의 태실이 함께 모여 있는 ‘선석산’(경북 성주군 월항면)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태실 

유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수가 도굴 또는 교란돼 1977년 성주군에서 보수정화사업을 

진행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태실 유물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확인된 유물들도 국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미술관, 일본의 미술관, 개인 소장 등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세종의 왕자 태지석’ 6점,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 7점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기증을 통해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을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출처: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