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2742

말(言)과 마음 (心)

월남전이 끝나갈 무렵,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귀국 즉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오라고, 보고 싶다며 어머니는 울먹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문제가 있어요. 지금 제 옆에는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동료가 있어요. 그는 돌아갈 집도, 혈육도 없어요. 게다가 전쟁 중에 팔과 눈을 하나씩 잃었어요. 그와 우리 집에서 함께 살 수 있을 까요?” “글쎄다 아들아. 네 마음은 안다만 며칠 정도는 가능하겠지. 어쩌면 몇 달도…. 그러나 평생 그럴 순 없지 않겠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세상에 그런 장애인을 언제까지나 함께 데리고 살순 없을 거야. 괴로운 짐이란다. 여러사람을 힘들게 할거야.” 어머니의 이같은 답변에..

좋은 글 2020.11.30

'헤밍웨이 풍선'?  

심리학 강의시간이었습니다! 교수는 풍선 속에 각자의 이름을 써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풍선들을 한 군데에 모아 천정으로 날려 보냅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교수는 자기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은 딱 5분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풍선을 찾으려고 서로 부딪히고, 밀치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5분이 흘렀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 주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기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찾았습니다! 교수는 말합니다.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네 삶과 똑 같습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행복이 어디 있는..

좋은 글 2020.11.29

기적의 비결 ?

뉴욕의 한 공동묘지 관리인이 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일주일에 5달러씩 돈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편지도 같이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아들 묘에 갈 수가 없습니다. 아들 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신선한 꽃을 갈아 꽂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 주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수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 공동묘지를 한 부인이 방문하였습니다. 차가 도착하자 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을 운전기사가 부축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쓰러질 듯 흔들렸습니다. 곧 죽을 것 같은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관리인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1주일에 한 번씩 편지와 5불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아담스입니다. 제가 오늘 ..

좋은 글 2020.11.28

비오는 날 아침 /이해인 시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 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홀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 내는 검손이라고- 오늘은 나도 이야기 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좋은 글 2020.11.27

☆마음먹기 나름☆

어떤 관광객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경하다가 목이 말라 폭포의 물을 떠서 맛있게 마셨습니다. “아, 물맛 좋네!” 하고 걸어 나오던 그는 폭포 옆에 ‘포이즌’(POISON)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독 성분이 든 물을 마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창자가 녹아 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급히 병원에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전해들은 의사는 껄껄 웃으면서 “포이즌은 영어로는 ‘독’이지만 프랑스어로는 ‘낚시금지’란 말입니다. 별 이상이 없을 테니 돌아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이 말 한 마디에 그렇게 아프던 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됐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좋은 글 2020.11.25

♡아름다운 우정♡

고려말기에 이당은 광주고을 관아의 아전 출신으로 원님의 딸과 결혼했던 신분이 기록에 남아있어서 광주 이씨의 중시조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당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5명의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이당의 아들 이집에게는 최원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영천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자 개성으로 올라와 이집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이집과 최원도는 함께 동문수학하였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둘 사이의 우정은 아주 돈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공민왕이 개혁을 위해서 등용한 요승 신돈이 절대 권력을 휘드르자 점차 타락하여 세상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최원도는 공민왕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는데 여러번 신돈의 전횡을 비판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그 꼴을 참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영천..

좋은 글 2020.11.24

♡ 아버지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

좋은 글 2020.11.22

♡아름다운 우정♡

고려말기에 이당은 광주고을 관아의 아전 출신으로 원님의 딸과 결혼했던 신분이 기록에 남아있어서 광주 이씨의 중시조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당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5명의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이당의 아들 이집에게는 최원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영천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자 개성으로 올라와 이집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이집과 최원도는 함께 동문수학하였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둘사이의 우정은 아주 돈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공민왕이 개혁을 위해서 등용한 요승 신돈이 절대 권력을 휘드르자 점차 타락하여 세상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최원도는 공민왕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는데 여러번 신돈의 전횡을 비판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그 꼴을 참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영천으..

좋은 글 2020.11.22

사랑의 터치(Touch)

위 한장의 사진을 보신적이 있는지요 ? 하나의 인큐베이터 안에 함께 있던 두 명의 신생아. 한 아이의 팔은 다른 한 아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생명을 구하는 포옹(The Rescuing Hug)’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카이리와 브리엘은 매사추세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예정일보다 12주 일찍 태어났습니다. 두 아이는 1kg도 안 되는 조산아로 태어나 각각 다른 인큐베이터에 넣어졌습니다. 의사는 심장에 이상을 안고 태어난 브리엘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카이리는 잘 자랐는데, 브리엘의 상태는 달리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나빠졌습니다. 호흡과 맥박이 좋지 않아 거의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생후 1개월 정도 되던 때였습니다. 이때 19년..

좋은 글 2020.11.21

"나는 朴正熙란 이름 석자로 족하다"

號도, 명예박사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했다. 朴正熙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金聖鎭씨에 따르면 故박 전 대통령은 號(호)가 없었다고 한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 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朴 대통령은 "박정희란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고 金 당시 대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朴 대통령은 호를 쓴 적이 없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 대통령은 "박사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朴 대통령은 18년간 재임했으나, 그 흔한 명예박사 학위가 하나도 없다. 朴 대통령은 私信을 쓸 때는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대통령은 자신의 ..

좋은 글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