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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의 節槪와 志操

김정웅 2024. 10. 18. 00:05

 

성삼문은 단종 복위에 앞장섰으나 
발각돼 39세를 마지막으로 처형됐다.

성삼문이 거사 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때 세조가 묻는다.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그러자 성삼문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라고 답한다.

세조는 죽기를 각오한 성삼문의 의지를 알게 됐다.
또 세조가 성삼문을 직접 심문할 때도 끝내 왕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세조가 다시 묻는다. 
"네가 나를 나으리라고 하니 그럼 내가 준 녹봉(급여)은 왜 먹었느냐?”
그러자 성삼문은
“상왕(단종)이 계시는데 어찌 내가 나으리의 신하인가? 
당신이 준 녹은 하나도 먹지 않았으니 내 집을 수색해 보라고"했다.

세조가 명하여 집을 수색하니 즉위 첫날부터 받은 녹봉에 
어느날 받은 녹이라고 표시를 해 전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이런 태도에 화가난 세조는 쇠를 불에 달궈 담금질로 성삼문의 
다리를 뚫고 팔을 지졌으나 
“쇠가 식었구나, 다시 달구어 오라”고 성삼문이 말한다.
국문을 마치고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면서 
성삼문은 한수의 시를 읊는다.

"북소리 둥둥 이 목숨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는 서산을 넘네. 저승으로 가는 길엔 
주막도 없다는데 이 밤은 어느 집에서 쉬어갈수 있을까?"
돌아보니 어린 딸이 울면서 따라온다.

이에 성삼문은 “사내아이는 다 죽어도 너만은 살겠구나” 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죄인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언정 끝까지 
굽히지 않은 절개와 지조는 오늘날 이합집산으로 줄을 서고 옮겨 
다니는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갖추어야 할 제 1의 덕목이 아닐런지! 
성삼문의 절개와 지조가 새삼 생각나게 합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