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에 이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된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재된 메타버스의 본질은 현실의 나를 초월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이 메타버스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300년 전 장자가 ‘호접몽’에서 “내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가, 아니면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가”라고 했듯, 인류는 오랫동안 현실을 넘어선 새로운 자아를
꿈꿔왔다. 그 바람은 꿈으로, 샤먼의 유체이탈로, 고구려 무덤의 벽화로 표출됐다.》
고구려인이 구현한 가상세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바람은 죽은 자의 영원한 거처인 무덤으로 대표된다. 사람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 믿지 않고 무덤을 저승의 거처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고구려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기호와 모티브를 갖춘 벽화가 무덤의 방을
감싸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수많은 가상세계의 배경에서 보이는 화사한 색감의
별천지에서 고구려의 벽화가 연상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고구려 벽화 무덤은 독특한 모죽임 천장(모서리를 돌을 엇갈리게 쌓아서 마치 입체적인 하늘의
모양처럼 천장을 덮는 기술)으로 만들었다. 고구려인들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하늘을 묘사한
이유는 현실과 하늘 세계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지상에 해당하는
벽에는 고구려인들의 실제 생활을 생동감 있게 담았고, 천장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의
별과 신화적인 요소를 섞어서 표현했다. 마치 최근 유행하는 아바타처럼
현실과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현실과 가상의 모습을 섞어서 3차원의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메타버스의 세계는 바로 1500년 전
고구려 벽화 속에 들어 있었다. 고구려 벽화의 찬란한 예술세계는 무덤 속 주인공이 저승에서
진정한 메타버스의 세상을 살기 바랐던 고구려인들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고구려뿐 아니다. 세계 곳곳의 벽화와 바위그림은 죽음을 새로운 출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결과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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