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을 냄비에 끓여 밥상 한가운데에 놓고 식구끼리
같이 떠먹던 모습을 바라본 스웨덴 사진 작가가
위생관리가 안된 민족이라 했다지만
정말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식구'란 조상으로부터 물러 받은 우리민족의
유산이자 전통이고 개념입니다.
오늘날 진정 옛날과 같은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식구'란 게 있기는 할까요?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우리의 단어 '식구'가 그립고,
그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중국은 '일가'(一家), 일본은 '가족'(家族)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 합니다.
즉,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같이 밥 먹는 입'이란 뜻 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아내나 자식을 소개할 때도
'우리 식구'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 가정의 위기가 심각해 지고 있는 것은 가족 간에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풍조가 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몇 년 전 뉴스에 나온, 고된 이민 생활 속에서도 6남매를
모두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보내, 미국 최고
엘리트로 키운 '전혜성' 여사도,
자녀 교육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식사는 가족이 함께 했다"며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읍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녁 귀가시간도 각자 달라 저녁식사를 한 식탁에서 하기는 커녕,
언제 귀가 했는지 서로 모르고 각자 방에서 잠자기 바쁩니다.
이러한 일상의 연속이니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어떤 때는
며칠간 얼굴 못볼 때도 허다 합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늦게 귀가하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이나 장롱의 이불 속에 밥을 묻어 두곤 했습니다.
밥의 온도는 곧 사랑의 온도 이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어머니는 뜨끈한 국과
따뜻한 밥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전기밥솥이 그 자리에 대신 놓여있고,
라면 등 몸에 좋지않는 인스턴트 제품이 집집마다 있어
필요할 때면, 밤중에라도 각자 알아서 처리하게 끔,
너무도 친절하게 배려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밤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밥상 차리라고 했다간
이 시간까지 밥도 못먹고 어딜 돌아 다녔느냐고
핀잔 듣기 십상입니다,
느닷없이 소낙비 오는 밤, 버스 정류장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언제 올 줄도 모르는 '식구'를 기다리는 그 많은 모습들을
요사이는 볼수가 있는가요?
누가 말했던가? 오늘날 아버지는
"울고 싶어도 울 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버지는 직업 형편상
귀가하는 시간이 늦읍니다.
어쩌다 아이들이 깨어 있더라도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제방에서 건성으로 인사만 건넵니다.
그러니 밥상머리 교육이나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고 나아가 얼굴은
자주 못 보더라도 서로 각자의 시간과 생활은 간섭이나 침범을
하지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 찬바람 불듯,
집안 분위기를 냉각 시킵니다.
평소 눈길 한 번 준 일 없던, 애완견만이 한 밤중에 쓸쓸히 반갑게
맞아주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식구'란 정겨운 단어가 그립고, 어릴때 빙둘러 앉아
함께했던 밥상이 정말 그립습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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