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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리(順理)... 운파 정하선

김정웅 2025. 2. 18. 00:10

 

 

세상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저마다의 길을 가 진다. 강물은 바다로 흐르고, 나뭇잎은 
계절 따라 색을 입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거나 
거스르려 할 때, 삶은 더 큰 저항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 산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한 작은 계곡물이 떠오른다. 물은 바위에 부딪히며 
돌아가고, 언덕에 막혀 새 길을 찾아 흘러간다. 물길을 막으려 애쓰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순리 그 자체였다. 물이 그러하듯,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때로는 벽처럼 느껴지는 시련 앞에서도 억지로 돌파하려 하기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순리를 따르는 길이다.

나는 어릴 적 무언가에 쉽게 집착하곤 했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애쓰고, 되지 않을 
일을 억지로 이루려 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된다. 
세상은 모든 것을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지 않는다.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즉 순리에 순응하는 태도가 삶을 더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삶은 때로 우리에게 ‘멈추라’고 속삭인다. 고집스레 직진만 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다. 내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은 비참하기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그것은 잘못된 길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길로 나아갈 기회를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리란 곧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무기력하게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순리란 ‘무엇을 해야 할지’와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를 스스로 
분별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는 데 있다. 흘러가는 물처럼 장애물을 

만나도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은 순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내가 맞닥뜨린 경험과 선택, 
그리고 기다림과 포기가 어우러져 현재의 내 삶을 이룬 것이다. 순리를 따르는 삶은 
거창하지 않다.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물결이 반짝일 때, 나무가 계절을 
입을 때, 우리는 이미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삶이 답답할 때면 나는 산길을 걷는다. 물소리와 나뭇잎의 흔들림을 들으며 생각한다. 
억지로 이루려 했던 것들, 놓아야 했던 것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길들. 그 모든 것이 나를 순리로 이끌고 있음을 느낀다.

순리를 따른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믿는 일이다. 이치에 맞게, 
자연의 흐름처럼 유연하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의 삶도 
강물처럼 넓고 깊은 바다에 닿게 되지 않을까.

 

- 수필가/운파 정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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