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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부의 고백

김정웅 2023. 9. 13. 21:18

 

"엄마, 나 오늘부터 도시락 두 개 싸 줘, 
한 개로 부족하단 말이야." 

아들이 요즘 부쩍 크려고 그러는지, 밥 타령을 하며 
도시락을 두개 싸달고 요청했습니다.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며, 늦게 오던 아들이 오늘은 
시험을 치루고 일찍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도시락 하나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들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들어 제 가슴에 안기더니 그제야 큰 소리로 울어 버리는 아들, 
그동안 하나 더 싸간 도시락은 아들의 짝꿍이 집안 사정으로 도시락을 
못 싸 오게 되어 싸다 준 거라는 말을 하며 울먹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친구 엄마가 암 수술을 하는 날이라, 어젯밤 병원에서 
꼬박 새우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껏 힘든 친구를 위해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같이 병원으로 가서 
병 간호를 해줬다는 말도 함께 했습니다. 

애써 아들의 등을 토닥거린 후, 부엌에 와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친구의 엄마를 위해 병간호를 했다는 것이 
화나기 보다는, 요즘같이 이기적인 시대에, 남의 아픔을 
헤아릴줄 아는 아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저녁 아들은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들어와 현관 앞에 주저앉고 맙니다. 

"울 아들 오늘도 고생했네" 

"엄마, 수술은 잘 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근데..." 
말끝을 흐리든 아들의 눈빛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애절함으로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친구가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대." 

말을 잇지 못하고 등을 보인 채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 맘엔 알 수 없는 
애잔함이 다가왔습니다. 

며칠 후, 집에 온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습니다. 

"엄마, 친구 집에 웬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김치와 
음식들을 한 아름 주고 가셨대." 

"헐. 대박,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그렇지 엄마! 야호, 신난다." 

저렇게 신난 아들의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이 두 번 더 지난 한가로운 오후, 

"엄마,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가 또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해 
주시고 가셨대. 진짜 대박이지, 그렇지? 엄마, 
그 아주머니 천사다. 그치?" 

연신 그 아주머니 칭찬에 침이 말라가는 아들을 보고선,

"너 그러다 그 아주머니를 이 엄마보다 더 좋아하겠다." 

"벌써 그 아주머니 팬이 되었는걸요. 아마 조만간에 
엄마보다 더 좋아질 것 같은데요" 

그렇게 아들은 매일매일 특종을 실어 나르는 신문기자처럼 친구네 
집 소식을 저에게 전하는 게 일이 되어갔습니다. 

노을이 구름에 업혀 가는 해 질 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저의 핸드폰으로 아들이 
보낸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방금 보았어요." 

친구네 집에서 나오는 저의 모습을 아들이 본 듯합니다. 

다시 또 울리는 아들의 문자, 

"행복을 퍼주는 우리 엄마. 내 엄마라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자리, 그 자리에 있어주는 행복나무 씨앗은, 
나누면 커지나 봐요. 

어느새 제 마음에 심어져 있는 '행복 나무'. 아들과 
함께 예쁘게 키워 보겠습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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