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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네, 그냥 살 수밖에...​

김정웅 2024. 12. 30. 00:10

 

네 명의 죽마고우가 있었다.
현역에서 기관장. 은행가, 사업가 등으로 눈부시게 활동하다가

은퇴 후에 고향에서 다시 뭉쳐 노년기의 우정을 나누었다.

날마다 만나 맛집 찾아 식도락도 즐기고 여행도 하니 

노년의 적적함 따위는 없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하기를 "우리가 지금은 괜찮지만 더 늙어 치매가 

온다든지 몹쓸 병에 걸려 가족을 힘들게 한다면 그것도 못할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비상약을 구할 생각이라네."

"무슨 비상약?"
"응 내가 곰곰 생각해 보니 잠자듯이 죽을 약이 없을까 생각했다네.
수면제 같은 것은 처방전이 필요할 거고 다른 방법은 번거롭고 주변이나

가족들에게 민폐이니 옛날의 고전적인 방법을 찾아냈다네."

"그게 뭔데?"
"내가 들으니 복어 알 말린 것이 최고라네. 그걸 먹으면 
졸듯이 자울자울 하다가 고통 없이 간다잖아."

이리하여 네 친구는 비상약 한 봉지씩을 가족 아무도 몰래 소장하였다.
참을 수 없는 비참한 노년을 위한.

80을 지나 옛날보다 만나는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생의 고비마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그사이 한 사람은 황혼 이혼을 했고 
한 친구는 젊어 이혼한 전 부인과 다시 황혼 재혼을.

한 사람은 부인이 암으로 상배를 했다.
혼자서 살고 있는 아버지가 안됐다고 아들 내외가 지극, 정성으로 

합가하자 해서 전 재산을 사업 자금으로 물려주고 합가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딸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그 착한 며느리는 

노인 냄새난다고 눈치를 주며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카리스마, 그 위엄은 종이호랑이처럼 구겨진 채 

방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마누라 제삿날. 예수 믿는다고 제사도 안 지내고 딸들도 오지 

않으니 쓸쓸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난 뒤 

내색 않고 추모관으로 아내를 찾아갔다.

"내가 갈게. 여보 기다려."

그날 밤 절친들에게 짤막한 우정에 감사하는 글을 남기고 딸들에게 

절절한 사과글을 남겼다. 아들 며느리에게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간직해온 그 "비상약"을 꺼냈다. 그것은 마치 비상약이 

아닌 삶의 질곡으로부터 탈출할 열쇠처럼 느껴졌다.

투명한 생수 한 컵에 갈색 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모처럼 편한 잠자리에 들었다.
자울자울 하다가 이제 저세상으로 가겠지.
이 세상 아무런 미련도 없도다.

다음날 아침. 세 친구들에게 온 메시지.

"그 비상약 모두 버려. 아무런 약효도 없어."

복어 독도 오래되면 독이 모두 사라져버린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힘들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느냐고 
앞으로 어쩔 거냐 묻는 말에 힘없이 대답했다

"그냥 ... 할 수 없이 그냥 살아야지.
근데 자네들 만나니 왜 이리 반갑고 좋으냐 응?
엉 엉 엉."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