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기도 / 시인 정채봉

김정웅 2024. 2. 15. 16:38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