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시인

김정웅 2023. 2. 25. 00:01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