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로 가르지 말라 /김동길
대한민국이 지키려고 애써온 자유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우리 앞에 있고 어쩌면 대한민국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의식구조나 개개인의 성향을 진보(Liberal)와 보수(Conservative)로
갈라놓는 일은 가능합니다. 조상들의 영(靈)을 모시는 제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또한 있습니다. 동성애가 뭐가
나쁘냐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동성애는 절대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를 진보적이라고 하고 후자를 보수적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통용되는 이념의 문제로서의 양분(兩分)법은 전혀 내용이
다릅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의회정치가 자리를 잡으면 자유의 고지가
상당한 높이에서 점령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아가 평등을 위해 자기희생을
각오하는 용사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진보’는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좌익’은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과 맞서서 싸우게 마련입니다.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에 참가한 ‘선량한
한국인들’이 어쩌다 모두 ‘보수’로 간주되어 곤욕을 치르는 웃지 못 할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나라의 ‘진보’요 ‘좌익’입니까?
종북 세력입니까? 적화통일을 꿈꾸는 악당들입니까?
그런 사람들을 ‘진보’니 ‘좌익’이니 하며 높이면 이 나라의 ‘보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보수’의 집결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대선을 앞둔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 좌익·우익, 진보·보수를 논할 여지가 없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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