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이 부산 서대신동에 살 때였다.
그때 선생님은 사모님과 두 분만 마당이 있고 마루가 있는 고택에 살고 계셨다.
두 분은 적적해서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개밥 당번은 늘 사모님이 도맡았다. 그러다보니 이 견공께서 사모님에게만 꼬리를
치고 선생님 알기를 영 우습게 알았다. 선생이 어디 외출을 하고 돌아와도
마루밑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멀뚱멀뚱 닭 소보듯 했다.
선생은 '조놈 봐라!' 싶었지만 유명한 교수님이 개한테 인사 안 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신문에 날 일이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마침 그날 사모님은 어디 볼 일이 있어 외출하고 집에는 견공과
선생님만 있었다. 그때 대문 밖에서 "개 파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견공이란 놈이 그 말은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애원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선생님이 개장수한테 넘길까 봐 똥줄이 탔던 것이다. 선생은 놈이 하는 짓을 보며 허, 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놈아, 개장수 말은 알아듣는 놈이 왜 주인은 몰라봤느냐?"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이 견공 같은 인간이 하나 둘이 아닌 것 같다. 곧 개장수가
나타날 것 같은데 그때는 참 가관이겠다. 꼭 그 구경을 하고싶다.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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