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한 주지 스님이 불자들에게 하신 말씀
큰 절에서 법회를 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절 입구의 일주문
앞에서 거지가 구걸을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측은히
여겨 대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절 관음전 낙성식이 있는 날!
그 날은 새로운 주지스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새 주지
스님에 대해 정작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윽고 주지스님이 부임하시는 날이다.
그런데 항상 절의 일주문 앞에서 구걸을 하던 남루한 그 거지가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신도들이 크게 화를 내며 끌어내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새로 오신다는 주지 스님이 오지 않자,
많은 신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그 때 쫓겨난 남루한 그 거지가
번개같이 신도들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가 법석에 앉았다.
신도들이 아우성을 치고 장내가 몹시 시끄럽자, 법석에 앉은
그 거지가 큰 소리로 일갈했다.
이 중에 참 불자(佛子)가 누구인고?
이 중에 바른 눈을 가진 자가 누구인고?
내가 이 절에 소임을 맡은 이번에 새로 온 주지올씨다.
여러분들이 과연 부처님의 제자라 할 수 있는가?
여러분들은 외모와 지위 그리고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참사람을
보는 지혜의 눈도 못 뜨면서, 무슨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면서
복을 구한다는 말인가?
부처님과 거래를 하러 오는 사람이지
어떻게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부처님께 절하면서 무엇을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과 거래를 하자는 행동이다.
내가 오늘 찾아와 시주를 하고 불공을 드렸으니, 부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 줍시사 라고, 부처님과 거래를 하려는 자가
어찌 불제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거의 달포 가까이 이 절 일주문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해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돈 한 푼
기꺼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복 짓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부처님 앞에 찾아와 잘 되게만
해 달라고 하니 그게 거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처님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업보를 참회하라 하셨거늘,
그 일은 팽개치고 그저 잘 되게만 해 달라고 해서는
참된 불자가 될 수 없느니라!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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