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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산등성이

김정웅 2020. 9. 15. 09:59

 

아버지와 산등성이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야 어찌됐던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 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없는 방문만 쾅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에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 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고 큰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 열일곱에 시집 와서 팔십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 치고는
저기 저 산등성이 넘는 것을 못 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 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 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 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 길을 내 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은 묻는다.
아버지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 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