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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 /송평인 동아일보논설위원

김정웅 2018. 1. 13. 11:14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 /송평인 동아일보논설위원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 생일 축하 행사는 서울운동장 같은 거대한 장소에서 열렸다. 남녀

고교생 수만 명이 참가한 매스게임이 열리고 여고생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이 대통령

본인이 원했든 측근들이 부추겼든 대통령이 한 정파의 지도자가 아니라 전 국민의 지도자로

표상돼 국민 전체가 생일을 축하하는 모양새가 이뤄졌다. 민주 정치에서는 오히려

전체주의적으로 비치는 그런 행태가 이승만 몰락의 원인(遠因)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어제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봤다. 활짝 웃고 있는

문 대통령의 모습에 ‘1953년 1월 24일 대한민국에 달이 뜬 날, 66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패널이 에스컬레이터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아이들의 목소리로

‘Happy birthday to you’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지하철 이용객 중에는 문 대통령 지지자도

있고 반대자도 있다. 반대자들은 불쾌감을 느낄 것이고 지지자라도 열렬 지지지가 아닌 이상

지나치다고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자발적인 광고인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성형광고를 전면 금지키로 했다. 지나친 성형광고가 판단력이 제대로 서지 않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성형광고는 자발적이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집권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냈다면 어땠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생각해볼 능력이 떨어지거나 ‘내로남불’이다.


왕조 국가도 아닌데 국가 지도자의 생일을 지지자들의 사적 공간이 아니라 지지자와 반대자가

섞여 있는 공공장소에서 축하한다는 발상은 퇴행적이다. 대통령은 헌법상 국민의 대표자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한 정파의 지도자다. 이 긴장관계가 허물어진다면 건강한 민주 국가가

못 된다. 대통령 생일 광고 정도는 가벼운 퇴행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퇴행이

문 대통령에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