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남기고 갈 것이 있는가?

김정웅 2017. 7. 18. 22:41



남기고 갈 것이 있는가?

 
왔다가 그냥 갈 수는 없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확고한 신념인 것 같습니다.

아들.딸 중에서도 아들은 대를 이어가며 조상의 성(姓)을 이어가지만 딸은 시집가면

남의 집의 아들.딸을 낳아주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딸보다 아들을 반기는 부모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가끔 내가 인용하는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호랑이도 사람도 남기고 갈 것은 없다”

라는 결론이 정답입니다.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서 그 가죽이 어디 살다 언제 죽은 어떤 호랑이의 가죽인지

아는 사람은 없고, 오늘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일지라도 1,000년

뒤에 그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돼 있을 사람은 아마 몇 사람 안 될 겁니다.


일찍이 영국 시인 John Keats(1795~1821)는 자기의 묘비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물 위에 적은 사람 여기 누어있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그는 결핵이라는 당시의 무서운 병에 걸려 항상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살면서

사랑했던 여인 Fanny Brown과 결혼도 못하고 26년의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 한

줄은 젊은 날의 나를 감동시켰고,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 있습니다. “Beauty is truth,

truth beauty."


이 한 마디가 나의 90 인생의 좌우명입니다. “아름다운 것 참된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그는 물 위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

줄의 시는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 있습니다. Keats는 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고민하는 젊은 혼을 지도해 줄 것입니다.


김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