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있는 법
“합리적인 것만이 존재한다”는 말은 철학의 결론입니다. 합리적인 것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가 없으면 혼란이 있을 뿐인데 사람은 혼란을 잠시 참고 견딜 수는
있지만 혼란을 오래 견디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계급이 생기고 신분 사회가 등장한 것도 사회적 질서와 안녕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계급이나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어서 ‘Blue Blood’라는
말이 생겼겠지만 사실상 ‘푸른 빛깔의 피’ 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에서나
기득권이 합리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런 경우에 한하여 매우 비합리적인 혁명이 터지게
마련입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나 1917년의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래서 터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잔인무도한 면이 있어서 당시 프랑스에서는 ‘공포정치’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이 몽땅 살해됐고 시체는 다
토막을 내 어느 장소에서 기름 뿌리고 불을 질러 재만 남았는데 그 재는 바람에 날려 간 곳이
묘연합니다. 딸 하나 아나스타시오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할 일이 있고 그 뒤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김성수 선생은 ‘공선사후’ (公先私後)라는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모든 공직자의 필수적
사고방식이 이것입니다.
순서를 몰라서 혼란스러운 사회가 한국 사회입니다. 아무리 계급투쟁을 좋아해도
Bourgeois 계급이 생기기도 전에 Bourgeois 계급을 타도하는 일은 이치에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그 계급이 등장하여 횡포를 일삼으려 할 때
분연히 일어나 일격을 가하는 아량과 여유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등을 강조하는 정당이 (그것이 사회당이건 노동당이건) 나타나 준비를
시작하기 바라는 바입니다. 민주주의는 정당 정치가 돼야 합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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