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421

안중근 미공개 유묵, 경매서 13억원 낙찰…

독립유공자 후손 기업이 구입 안중근 의사의 미공개 유묵이 27일 경매에서 13억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이날 서울 청담동 분더샵 청담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山色古今同)이 시작가 6억원에 출품돼 13억원에 낙찰됐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의미의 이 유묵에는 안 의사의 수인(手印)과 함께 1910년 3월 뤼순(旅順) 감옥에서 썼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낙찰자는 한미반도체다. 한미반도체는 독립운동가 곽한소 선생의 후손인 고(故) 곽노권 회장이 창립한 회사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곽노권 회장은 생전 곽한소 선생의 기록물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한미반도체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자부심과 애국정신을 ..

장진욱의 그림... "공기놀이"

어린 시절 아들 방에 오래 걸어뒀던 그림이에요. 이건희 컬렉션의 첫 전시 ‘한국미술명작’을 보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이 그림 앞에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한다. ‘공기놀이’ 얘기다. 다가가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장욱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평생 까치와 나무와 가족을 공책만 한 화폭에 담으며 “작은 것들을 친절하게 봐주라”던 장욱진이다. 언제 이런 낯선 그림을 그린 걸까? "지금 5학년인데 졸업을 하고는 미술학교로 가겠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할 바가 있을 줄 압니다." 1938년 장욱진(1917~90)이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 중등부에서 특선, 그중에서도 최고상에 꼽혔을 때 양정중 미술부 지도교사가 신문에 한 인터뷰다. 86년 뒤, 제자가 이렇게 사랑받는 화가가 될 ..

"모나리자(Mona Lisa) 탄생과  모든 것"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다빈치는 일반적으로 화가(畵家)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만능 천재였던 그는 화가 이전에 음악가, 건축가, 기계 공학자, 해부학자, 발명가, 화학자, 물리 실험가 이기도 하다. 그의 노트에는 비행기의 날개 모양까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다빈치'는 신분상 결혼이 불가능한 시절에 태어난 서자(庶子)이다. 다빈치의 주요 작품인 모나리자는 신비한 웃음과 미완성 작품으로 유명한데 그 사유는 아래와 같다. 당시 초상화, 벽화, 성화가 유행할 때 '리자'라는 24살의 여인이 남편과 함께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다빈치를 찾았다. 리자의 아름다움은 다빈치를 감동시켜 승낙하게 된다. 그림에 전력을 다하였으나 리자의 모습에서 살짝 스치는 미소를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웠..

🌾미켈란젤로 작품에 사인이 없는 이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내키지 않으면 결코 작품을 제작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또한 독특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작품에 결코 사인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피에타〉상을 제외하고는 어느 작품에도 사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습관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던 때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 성당에 틀어 박혀 그림을 ..

🌾 화산재 아래서 부활한 고대 도시의 영화, 서울에 온다

[폼페이 유물전 -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 2000년 전 조각상·그림 등 127점 더현대서울서 내년 1월 13일부터 오랜 세월 화산재에 파묻혔다 발굴된 폼페이 유물은 고대 로마의 찬란했던 문화와 일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화산재가 타임캡슐 역할을 해 도시 전체가 놀랍도록 완벽하게 보존됐고, 발굴이 시작된 1784년 이후 현재까지도 발하게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신들의 조각상은 화려한 폼페이의 면모를 보여주고, 상점에서 팔던 빵과 와인을 담은 항아리는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뤄졌던 역동적 도시 모습을 전해준다. 조선일보사·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CCOC 공동 주최로,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한 거대한 조각상,..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서 쓴 미공개 유묵, 경매에 나온다

안중근,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1910). 34×135cm. 1910년 3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며칠 전에 쓴 유묵(遺墨)이 국내 경매에 나왔다. 일본의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이 유묵은 그간 국내 학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 주목된다. 서울옥션은 19일 오후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개최하는 제176회 미술품 경매에 안 의사가 쓴 유묵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 (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를 출품한다고 밝혔다.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견하겠는가”라는 내용으로, “경술년 삼월 뤼순 감옥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이 쓰다”라는 문장과 함께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사형 집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

나폴레옹 상징 '이각모자', 佛경매서 27억원에 팔렸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썼던 이각 모자가 프랑스에서 열린 경매에 출품돼 한화 약 27억원에 팔렸다. 19일(현지시각)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경매업체 오세나 옥션이 주관한 경매에서 나폴레옹의 이각모가 150만 유로(약 21억21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150만 유로에 수수료 28.8%를 더한 193만2000유로(약 27억3000만원)를 지불해야 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나폴레옹 모자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AP통신은 이 모자를 두고 “나폴레옹이 19세기 프랑스를 통치하고 유럽에서 전쟁을 벌였을 때 착용했던 ‘시그니처 모자’”라고 설명했다. 다른 장교들은 일반적으로 이각모의 챙이 앞뒤를 향하도록 썼지만, 나폴레옹은 챙이 양 어깨방향으로 향하도록 착용했다. 그의 모자 착용..

피카소의 '시계를 찬 여인'... 1827억원에 낙찰

파블로 피카소의 1932년작 ‘시계를 찬 여인’이 약 1827억원에 낙찰됐다. 이는 피카소의 작품 중 역대 두번째 최고가로, 올해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에 팔린 작품이 될 전망이다. 8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시계를 찬 여인’이 1억 3930만 달러(약 1826억 9000만원)에 팔렸다. 이 작품은 올해 초 사망한 부동산 개발업자 에밀리 피셔 랜도의 소장 작품 중 하나로, 이는 전화를 통해 입찰한 익명의 입찰자에게 돌아갔다. 이는 지금까지 올해 전 세계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에 팔린 예술 작품이며, 경매로 판매된 피카소 작품 중 두 번째로 비싼 작품이다. 최고가를 기록한 피카소 작품은 ‘알제의 여인들’로, 2015년 1억7930만 달러..

조선 왕실 행사에 썼던 '달항아리', 35억에 경매 나와

국보급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경매에 나왔다. 서울옥션은 “24일 열리는 10월 경매에 18세기 전반 백자 대호가 출품됐다”고 밝혔다. 시작가 35억원. 지금까지 국내 경매사에서 거래된 달항아리 중 최고 기록은 2019년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1억원에 낙찰된 백자 대호다. 낙찰만 되면 국내 달항아리 경매가 최고 기록을 깨는 것이라 주목된다. 서울옥션 측은 “풍만한 양감과 꾸밈없는 형태, 유백색 피부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높이 47.5㎝에 이르는 큰 크기에도 전체적인 비례가 적당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흔히 달항아리로 불리는 조선 시대 백자 대호 중 40㎝ 이상 크기는 주로 왕실 행사에 사용됐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국보로 지정된 작품은 3점뿐이고, 보물까지 포함해도 20여 점에 불과..

광화문월대 복원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장소, ‘나도 한 번 가보자’ 주말 관광객 끊임없이 이어져 지난 15일 복원된 광화문 월대와 현판으로 일제강점기 때 철거와 훼손을 당한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가 100여년 만에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했다. 월대는 궁궐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로, 과거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장소로 쓰였다. 한편 월대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전차 철로 설치 등으로 훼손된 후 차도로 사용되다가 지난해 9월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집중발굴 작업을 벌여 일제강점기 때 파괴, 훼철된 옛터를 드러냈다. 발굴조사 당시 월대 전체 규모는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며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지 기초시설 너비는 약 7m에 달한다. 특히 궁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