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명화 감상

운보 김기창 화백 작품(4편)

김정웅 2016. 12. 10. 20:07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생애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운보는 연4회 특선

경력으로 27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는데, 이후로 광복 전까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이 이어졌다.


1943년 30세에 아내 우향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연애 끝에

          결혼하였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교포.한국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台北)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東京)·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교직을 옮겼고 문화자유전에 출품했다.

1963년 5월문예상 미술본상 수상, 제7회 상파올 비엔나래 한국 대표로 출품.

1964년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도미(渡美), 1969년에 재차 도미하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1967년 상파울, 미국과 멕시코 등을 시찰한 후 작품에 변화를 보였다.

1973년 세종대왕.김정호.을지문덕 등 역사적 위인들의 영정 제작을 담당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

1984년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

2001년 1월 23일 사망했다.


상훈 : 1963년 제2회 5월문화상,

          1971년 제12회 3·1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81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6년 5·16민족상(사회부문)과 서울시문화상(미술부문)을 수상하였다.

          2001년 2월(사망후)에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네이브 지식백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