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겨울을 주제로 한 그림을 평생 몇 점 그리지 않았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풍경화는 봄, 여름, 가을 경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소장한 ‘눈 덮인 풍경’(1888년·사진)은 어딘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888년 2월, 프랑스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직후였다.
남프랑스의 따뜻한 색감과 강렬한 햇빛을 쫓아왔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었다.
실망스러운 날씨였지만 화가는 이내 붓을 꺼내 들었다. 눈 덮인 넓은 들판은 단조로운
배경처럼 보이지만 갈색, 녹색, 파란색의 두껍고 독특한 붓질 덕분에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화면 왼쪽에서 시작돼 눈 덮인 산을 향해 이어지는 흙길에는 걸어가는 남자와 개의 뒷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어 감상자가 이들을 멀리서 뒤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림 속 남자는 고독한 화가 자신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일 수도 있다. ‘해바라기’나 ‘자화상’처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그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차분하면서도 고요하다. 차가운 겨울 들판을 그렸는데도
평온함과 평화를 느끼게 한다. 그 때문일까? 화가의 대표작이 아닌데도 이 풍경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미국 최고권력자도 한때 이 그림을 간절히 원했다. 2017년 9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관저 내 침실을 장식하기 위해
이 그림을 빌려 달라고 소장처에 요청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림을 빌려줬을까? 수석큐레이터였던 낸시 스펙터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 대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황금 변기 ‘아메리카’를 대여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미술관이 소장한 고흐의 작품은 공공의 문화재다. 제아무리 최고권력자라도 감상을 독점할
수 없는 모두를 위한 명화라는 메시지였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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