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섭(洪耆燮,1781~186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그는 젊은 시절 아침을 먹고 나면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였지만
청렴하기론 감히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당시 그의 일화는 청구야담, 명심보감에 실려 후세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홍기섭이 참봉으로 임명되어서 종로구 계동의 윗마을에 살았는데,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집안에 들어온 도둑은 아무리 둘러봐도 훔쳐갈 만한 게 없자 솥단지라도
떼어가겠단 마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방안에서 인기척 소리를 들은 홍기섭의 부인은 도둑이 부엌에 들어와
솥단지를 떼려고 한다며 남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자,
홍기섭은 "그것을 떼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더욱 형편이 어려운 사람인
것 같소 그냥 가져가도록 하십시다" 하면서 태연하게 다시 잠을 청했다.
부엌에 든 도둑은 솥단지를 떼가려고 솥뚜껑을 열보니,
한동안 밥을 해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집주인이 측은하고 가엽단 생각을 하게 된 도둑은 낮에 다른 데서
훔친 일곱 냥의 엽전 꾸러미를 솥단지 속에 넣어두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홍기섭의 부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떼어간 줄로만 알았던 솥단지가
제자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솥안에 누런 엽전까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부인은 이는 필시 하늘이 우리 부부를 불쌍히 여겨서 내려준 것이 분명하니
우선 땔나무와 식량이며 고기를 사면 어떠냐고 남편에게 묻자
홍기섭은 정색을 하면서 아내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하늘이 내려 준 것이겠소? 이 돈은 틀림없이 잃어버린 자가 있을 터이니
돈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돌려주는 게 좋겠다며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빨리 와서 찾아가기 바란다고 방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윽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지난밤 그 도둑이 선비네 집의 동정도 살펴볼겸 왔다가
대문에 써 붙인 글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홍기섭 부인에게 물었다.
"이 집이 누구 댁이오?"
"홍참봉 댁이오."라고 대답하자, 다시 도둑이 “저기 대문에 써 붙인 글은 무슨 뜻이오?"
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그간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주자 도둑은 무엇인가를
결심을 한듯 홍참봉을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홍기섭을 만난 도둑은 바닥에 엎드려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자신이 어젯밤에 들렸던
도둑임을 밝혔다. “남의 집 솥안에 돈을 잃어버릴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
면서 자신이 돈을 놓고 가게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고 정중하게
돈을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홍기섭은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갖겠는가 당장 가져가기 바라네"라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도둑은 오늘 비로소 양반다운 양반을 보았다며 앞으로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도둑질 습관을 고치고 홍참봉의 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이같은 인연으로 인하여 홍기섭과 도둑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가세(家勢)를 불려갔다.
이후에 홍기섭의 손녀가 헌종(憲宗)의 계비가 되었고
아들 홍재룡(洪在龍)은 익풍부원군이 되었다.
홍기섭 또한 벼슬이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유씨 성을 가졌던 도둑 역시
많은 덕을 쌓아서 유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하품하는 사이에 금니빨을 뽑아가는 세상 우리 모두에게
홍기섭의 염결(廉潔)과 의연함이 요구된다. -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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