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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감동시킨 선비, 홍기섭(洪耆燮)의 일화

김정웅 2024. 11. 23. 00:10

 

 

홍기섭(洪耆燮,1781~186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그는 젊은 시절 아침을 먹고 나면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였지만 
청렴하기론 감히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당시 그의 일화는 청구야담, 명심보감에 실려 후세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홍기섭이 참봉으로 임명되어서 종로구 계동의 윗마을에 살았는데,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집안에 들어온 도둑은 아무리 둘러봐도 훔쳐갈 만한 게 없자 솥단지라도
떼어가겠단 마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방안에서 인기척 소리를 들은 홍기섭의 부인은 도둑이 부엌에 들어와 
솥단지를 떼려고 한다며 남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자, 

​홍기섭은  "그것을 떼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더욱 형편이 어려운 사람인 
것 같소 그냥 가져가도록 하십시다" 하면서 태연하게 다시 잠을 청했다. 

​부엌에 든 도둑은 솥단지를 떼가려고 솥뚜껑을 열보니, 
한동안 밥을 해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집주인이 측은하고 가엽단 생각을 하게 된 도둑은 낮에 다른 데서 
훔친 일곱 냥의 엽전 꾸러미를 솥단지 속에 넣어두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홍기섭의 부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떼어간 줄로만 알았던 솥단지가 
제자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솥안에 누런 엽전까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부인은 이는 필시 하늘이 우리 부부를 불쌍히 여겨서 내려준 것이 분명하니 
우선 땔나무와 식량이며 고기를 사면 어떠냐고 남편에게 묻자 
홍기섭은 정색을 하면서 아내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하늘이 내려 준 것이겠소? 이 돈은 틀림없이 잃어버린 자가 있을 터이니 
돈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돌려주는 게 좋겠다며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빨리 와서 찾아가기 바란다고 방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윽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지난밤 그 도둑이 선비네 집의 동정도 살펴볼겸 왔다가 
대문에 써 붙인 글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홍기섭 부인에게 물었다. 

"이 집이 누구 댁이오?" 

"홍참봉 댁이오."라고 대답하자, 다시 도둑이 “저기 대문에 써 붙인 글은 무슨 뜻이오?"
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그간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주자 도둑은 무엇인가를 
결심을 한듯 홍참봉을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홍기섭을 만난 도둑은 바닥에 엎드려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자신이 어젯밤에 들렸던 
도둑임을 밝혔다. “남의 집 솥안에 돈을 잃어버릴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
면서 자신이 돈을 놓고 가게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고 정중하게 
돈을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홍기섭은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갖겠는가 당장 가져가기 바라네"라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도둑은 오늘 비로소 양반다운 양반을 보았다며 앞으로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도둑질 습관을 고치고 홍참봉의 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이같은 인연으로 인하여 홍기섭과 도둑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가세(家勢)를 불려갔다. 

​이후에 홍기섭의 손녀가 헌종(憲宗)의 계비가 되었고 
아들 홍재룡(洪在龍)은 익풍부원군이 되었다. 

​홍기섭 또한 벼슬이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유씨 성을 가졌던 도둑 역시 
많은 덕을 쌓아서 유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하품하는 사이에 금니빨을 뽑아가는 세상 우리 모두에게 
홍기섭의 염결(廉潔)과 의연함이 요구된다. -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