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법을 위하여
오늘이 내 생일이지만, 예수쟁이들의 말대로 하자면, 오늘이 일요일이라기보다는
‘주일(主日)’이기 때문에, 잔치는 오늘 하지 않고 어제 토요일에 치렀습니다.
해마다 이 날에는 냉면과 빈대떡으로 가까운 친구들과 후배나 제자들을 맞이하는데
작년 생일은 88 ‘미수(米壽)’라 하여 더 많은 친지들이, 한 300명 쯤 모여들어,
문자 그대로 성대한 잔치였습니다. 그 날 나와 함께 단상에 앉았던 ‘조선일보’의
방우영(方又榮) 회장은 먼저 저세상으로 가서, 그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늘
따라 더욱 간절합니다.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나는 공직에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다 ‘김영란 법’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번 생일에는 작년이나 재작년 생일 때처럼 수십 개의 난(蘭) 화분이
꽃가게에서 우리 집으로 배달되지는 않았는데, 그 사실이 내 마음에 눈물겨운 감동을
줍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이젠 이만한 수준이 되누나” 생각하니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기업을 크게 하는 후배 한 사람은 큰 난 화분을 하나 사서 리본까지
붙였다가 그 화분이 내게 누를 끼칠까봐 배달을 중지시켰답니다. 그 화분이 내 집에
보내지지 않은 사실이 생일을 맞은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습니다.
큰 잔치에 비용이 많이 들 테니 보태 쓰라고 해마다 내 손에 봉투를 쥐어 주는 매우
가까운 이들이 아직 있지만 나의 친동생 같은 사람들의 성의라 올해에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내년에 내 생일을 또 하게 된다면 김영란 법의 상한선인 10만원만
받기로 하겠습니다.
이 ‘법’의 세칙이 분명치 않고 애매모호한 면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 ‘법’이 이 나라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척결하는 시발점이 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국민이 이런 경건한 자세로 살면 공직에 앉아 큰돈을 꿀꺽꿀꺽 삼키는
요란한 소리가 국민의 귀에 더 분명하게 들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나쁜 놈들도 먹는
일을 많이 삼가고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앞에 두고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대청소’아닙니까?
깨끗한 정치, 깨끗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통일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또 한 번 ‘김영란 법 만세’를 불러봅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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