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오 저 늙은이
이보오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열 살이 좀 넘어 암송한 이 시조 한수는 내가 90까지 사는 동안 줄곧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내용이 하도 쉬워서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혼자 일어나 앉아 이 시조를 되새겨 보니 감개가 더욱 무량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노인들’에 대한 당부라고만 알고 그 시조를 읊조렸는데
‘저 늙은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 무안합니다. 이런 날이 올 것을
전혀 모르고 젊음을 자랑하던 그 날들이 다 가고 이제는 정말 초라한 노인입니다.
무겁건 가볍건 짐을 질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합니다. 옛날엔 나도 뛰어다녔는데
오늘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면 외계에서 온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성기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의 문턱에 서서 나는 제대로 걷기도 어려운데!
뛰어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월이 하는 일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주 하는 말이지만, 세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노인들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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