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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의 매미 울고 / 김동길

김정웅 2017. 8. 16. 19:44




속리산의 매미 울고

 
영조 때의 가인 이정진이 이렇게 읊었습니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매미와 쓰르람이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매미 소리뿐입니다.
박주산채(薄酒山菜)란 말이 있습니다. 맛없는 술과 변변치 않은 산나물로 손님을 대접할
때 주인의 겸손한 말투라 하겠습니다.


매미에 관한 어떤 기록을 읽어보니 매미야말로 매우 고상한 곤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넋을 잃고 들으면서도 매미가 겪은 기나긴 고통의 세월은 잘
모릅니다.


매미는 땅 속에서 보통 4년 내지 7년의 세월을 유충으로 살아야 하는데, 종류에 따라서는
12년을 유충으로 숨어 있다가 번데기가 되고 탈피하여 성충으로 변신, 여름 한철만 활기찬
생을 살다가 여름이 가면 매미의 삶도 끝이 나고 만답니다.


정상혁 보은 군수의 부탁이 있어 4시간 차를 타고 속리산에 가서 속리산 중턱에 군에서
마련한 휴양 숙소 학소대(鶴巢臺)에서 하룻밤을 자고, 비가 뿌리는 사이사이로 매미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거듭 생각해 보았습니다.


매미의 슬픈 노래는 나로 하여금 P. B. Shelley(1792-1822)의 시 한 수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We look before and after,
And pine for what is not;
Our sincerest laughter
With some pain is fraught;
Our sweetest songs are those that tell of saddest thought.


우리는 앞뒤를 돌아다보며
있지도 않는 그 무엇을 그리워하네
우리들의 가장 진실한 웃음에도
말못할 고통이 스며있고
우리들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 또한 가장 슬픈 생각을 말하여주네


보은 군민들에게 내가 한 이야기는 별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속리산 ‘학소대’에서
넋을 잃고 그 아침에 경청한 매미의 처량한 울음소리는, 때 묻은 나의 삶을 한 번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 하였습니다. 매미에게 나의 고마운 뜻을 전합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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