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6월 서울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회담사에서 보기 드물게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당시 두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문제를 두고 얼굴을 붉히며 거친 설전을 벌였다. 카터 대통령이 훗날 “동맹국
지도자와 벌인 토론 가운데 가장 불쾌했다”고 했을 정도였다.
기밀 해제된 미 외교 문서를 보면, 1979년 6월 29일 카터 대통령은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입국 하루 만인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양 정상의 모두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긴장감 있게 진행됐다.
포문은 박 대통령이 먼저 열었다. 박 대통령이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정책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더 증강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검토 중인
주한 미군 감축 규모는 전체 한국군의 0.5% 수준에 불과하다”고 맞받았다. 카터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국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며 유신(維新) 체제를 이어가던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카터는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를 가능한 한 많이 석방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무기한 유지할 의도는 없다. 충고를 새겨듣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 주한 미군 주둔 필요성을 주장했다.
회담에 배석한 박동진 전 외무장관은 자서전에서 “카터 대통령이 계속 (미군) 철수 압박을
넣었다”면서 “하지만 박 대통령은 ‘주한 미군을 영원히 두자는 게 아니다.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라면서 반대 논리를 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의 설전은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파행에 가까운 분위기로 회담이 끝나자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후 북한의 군사력 증강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 국방부·
국무부 측을 설득했고, 미 고위 당국자들도 카터 대통령에게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주한 미군 철수는 북한의 오판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군 철수 추진은 주춤거렸고 카터가 재선에 실패해 흐지부지됐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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