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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終點)

김정웅 2023. 9. 4. 18:45

 

 

지나는 바람을 붙들고서라도​ 악착같이 장사를 했기에​ 자식 넷을 ​보란 듯이 
키워 장가 보내고 나니​ 애써 열심히 할 것도​ 가꿀 것도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게​ 조금은 억울하지만,

사놓은 건물에서 나오는 달세로 ​여유 있게 살고 있다는 노부부가​ 새벽안개 짙게 
드리운 거리를 ​가방 두 개를 끌고 걸어 나오더니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귀퉁이에 앉아  ​초조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핍니다.

“여보, 큰아들내로 먼저 갑시다“

멍울진​ 거리를 달려가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큰 아들이 있는 ​
대전에 한 아파트 앞 이었는데요

"아니..​. 아버지 어머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물이나 한잔 다오"

바람 길 숭숭 난 가슴을​ 먼저 열어 보인 건 엄마 였는데요​...

“네 아버지 고향 친구​ 준태 아저씨 너도 알거다“

“준태 아저씨가 뭐 어쨌다고요?”

“네 아버지가 망한 준태 어저씨​ 보증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 집도 
경매로 넘어가 버렸지 뭐냐 "​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며느리가 차려온 술상에 ​막걸리 몇 모금으로​ 지친 설움을 
적셔나가던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엽니다.

“큰애야...​ 2년전에 병원 넓힌다고 빌려 간​ 일억을 
돌려주면 안되겠니...?“

“그 말씀은 ​병원문을 닫으라는 소리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니네집에 있기도 그렇고, ​당장 오갈 데가 없어서 그래“

“아무튼 그 돈은 지금 갚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그럼 우린 어떡하냐“

“그건 처신 잘 못한 아버지 문제니까​ 알아서들 하세요“라는 말로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문을 닫고 출근을 해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에 배어든 서러움을​ 지우기 
위해 남은 술 두어 잔을 연거푸 들이킨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내 얼굴 조차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식 일이라면 빗장 열어​ 부는 바람이 되어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몰라주는 ​
큰아들 내외와 목말라가는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지내자는 거예요?”

“갈 데가 없다는데 난들 어떡해”

“시골에서 ​넓게 사는 둘째 아들 집도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는 게 
어떠냐며 ​당신이 말 좀 해 봐요“

아들과 며느리의 ​싸우는 듯한 투박한 음성이 들려오고​
연이어 ​문을 노크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버지 어머니....​ 순천에 있는 형석이네에 가 계시는 건​ 어때요?"

​더 이상 ​할 말은 눈물이라 침묵으로 하고픈 말을 전한 아버지는​ 집을 떠나온 
그날과 같은 길을 ​짙은 어둠을 뚫고 나서고 있었습니다.

“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 어쩌다가 늘그막에 ​이런 엄한 꼴을 당하셨데요“

“너희에게 면목이 없구나”

“내 집이라 생각 하시고 편히 계세요"

과수원을 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살갑게 노부부를 맞이해주는 걸 보며​
자식 하난 잘 키웠다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도 잠시...

농번기 농사일 때문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쳐버린 노부부는 고단했는지 
늦잠을 자고 있을 때​ 거실에서는 아들과 며느리의 소곤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요...

“여보... 아버님이 큰애 아파트 계약할 때 빌린 돈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세요"
 
서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또 한 번 느끼며​ 아픔으로 견디다 일어난 
다음날도 자식에게 좋은 일이​ 부모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땀방울 
마를 날 없이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일손이 귀한데​ 김 여사네는 든든한 ​일꾼 둘이나 구했으니 좋겠슈..."

“이번 농번기만 끝나면 ​다른 자식들 한테 가라고 해야죠“

며느리가 ​이웃 사람이랑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부부는 한 번도 ​
가족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을​ 눈물로 애써 지우고는

다음 날​ 몸 둘 곳 없는 새벽이슬을 친구 삼아​ 달이 적셔놓은 길을 나섭니다.

비틀어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베어 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살얼음이 낀 처지를 한탄하며​ 대합실에 앉은 노부부는

3년 전 ​결혼한 막둥이 아들이 낳은 ​갓난 손자가 보고 싶어서인지​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왔지만 노부부는​ 아파트 벨을 누르지 않고​ 계단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만 있더니​ 더 깊어져 가는 슬픔에​ 
힘없이 일어나 내려오고 마는데요...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아 주세요)라고 ​현관문에 써 붙인 종이를 
보고​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노부부는​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할 그 곳보단

“정선이한테 연락 한번 해보구려”

“예전엔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오더니​ 서너 달 전부턴 아예 
연락도 없고​ 전화해도 받질 않더라고요“

서러움을 ​뉘인 젖은 꽃잎이 되어​ 역전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야만 하는 ​
토하지 못한 묵은 마음을 지우려 ​내키지 않는 딸의 아파트 
벨을 ​눌러대 보지만...
         
 ((((띵똥….)))

아무리 눌러봐도​ 열리지 않는 문만 처다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뒤돌아 서려는 그때​ 
앞집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지금 그집엔 아무도 없는데​ 왜그러시죠?“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사는 사람이 제 여식이구먼요“

앞집 여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온 곳은 병원이었고​ 
묻고 물어 겨우 찾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노부부는 링거병에 ​의지해 
잠들어 있는 딸을 보고 ​꼬꾸라지듯 달려드는 허기진 눈에서 떨어지는 ​
까닭 잃은 눈물만이​ 그 이유를 묻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엄마 아버지 걱정할까봐...“.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저 때문에 ​두 분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 옥상 공원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어문달을 바라보며 세월에 
씻어도 까맣게 묻어나는 아픔을 ​애닲게 바라만 볼 뿐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일이...”

“한푼도 보태준 게 없는 네게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면목이 없구나“

“제가​ 두 분 거처할 곳을 알아볼 테니까​ 불편하겠지만 
일단 제집에 가서 지내세요“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자식들과의 과거의 추억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 온 한평생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지만...

​자식은​ 부모를 가진 적도 없었으니까. 자식이 ​우릴 버렸다고 생각지 말자며...

그날 밤​ 남은 해 끝자락에 걸린​ 좀처럼 내려 오지 않는 이야기로​ 딸과 
이별을 한​ 노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딸의 집이 아닌 ​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자식들 마음 다 알았으니​ 이제 영감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잊혀짐보다 더 가슴 아픈 게​ 버려짐 같다며 ​지는 노을에 
비친 막걸리 한잔에 해묵은 설움을 토해내더니...

자식도​ 그저 좋은 남일 뿐이라는 ​세상​ 떠도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을 몰랐다며...                   

​“자식 한번 앉은 자리엔​ 백 년 동안 풀도 안 자란다 잖아요“

“종점에 와 봐야 알게 되는 게​ 인생이라더니만...“

​비가오면 ​부엌에 있는 온갖 그릇 다 가져와​ 떨어지는 빗물을 받쳐가며 
밥술에 ​반찬 서로 얹어주는 행복으로​ 복닥거리며 
모여 살던 그날을 ​그리워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부부는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가진 재산 전부를​ 가장 늦게까지 사랑해 줄 사람이​ 부모란걸 모르는 자식들 
대신​ 가진 재산 전부를 어렵고​ 힘든 이들 에게 기부하고 멀어진 자리에​ 
쉬어가는 바람이 전하는 말들이​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건​ 돈이었다며...


ㅡ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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