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종대왕
태조 이성계에게는 아들만 여덟이 있었습니다.
왕비 한 씨 몸에서 여섯, 계비 강 씨 몸에서 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지켜봐야 했던 이성계는 그가 큼직이 사랑하여 세자로
책봉했던 막내아들 방석(芳碩)이 1398년(태조 7년) 죽임을 당하는 참극을
겪은 뒤 인생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왕위를 방과(芳果)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칩거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둘째 형 방과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한 것도 야심만만하던 이방원의 책략이
었다고 합니다. 형 정종(定宗)은 2년 밖에 왕위를 지키지 못했고 1400년
드디어 방원은 왕위에 올라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막내를 왕위에
올려 그가 조선조 27대 군왕 중 최고의 명군이 되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것이
역사라고 하겠습니다.
세종은 천재였습니다.
하늘은 이탈리아반도에 Michelangelo(1475~1564)와 Leonardo da Vinci
(1452~1519) 같은 천재들을 두시기 전에 한국 땅에 세종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에 비해 세종은 더욱 다각적인 천재였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독일에
태어난 Goethe(1749~1832)같은 다양한 천재 이였음이 명백합니다.
그는 정음청(正音廳)을 만들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케하셨고
집현전(集賢殿)을 만들어 전국의 우수한 학자들을 총망라, 다양한 학문을 강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을
출판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농업, 역사, 지리, 의학에 관한 서적도 다수 간행케
하였으니 그의 관심의 분야가 매우 다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 과학, 국방에도 세종은 놀라운 천재를 발휘하여 조선조
500년의 튼튼한 초석을 마련한 셈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겠습니까? 한국인이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떳떳할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40년 언어학을 강의한 김진우 교수가 일전에 어떤
모임에서, 위화도에서 왕명을 어기고 회군(回軍)을 감행한 태조 이성계를 용납할
수 없지만 그의 손자들 중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이 태어나, 태조도 용서할 수
있고, ‘왕자의 난’으로 조야를 피로 물들인 태종 이방원도, 맏아들 양녕대군
(讓寧大君), 둘째아들 효녕대군(孝寧大君)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고 셋째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사실 때문에 밉지가 않다고 하여 내가 감탄하여 무릎을
쳤습니다. 세종대왕이 계셔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아, 세종대왕, 세종대왕!
- 김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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