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갈 것이 있는가?
김동길 교수
왔다가 그냥 갈 수는 없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확고한 신념인 것 같습니다.
아들.딸 중에서도 아들은 대를 이어가며 조상의 성(姓)을 이어가지만
딸은 시집가면 남의 집의 아들.딸을 낳아주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딸보다 아들을 반기는 부모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가끔 내가 인용하는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호랑이도 사람도
남기고 갈 것은 없다”라는 결론이 정답입니다.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서 그 가죽이 어디 살다 언제 죽은 어떤 호랑이의
가죽인지 아는 사람은 없고, 오늘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일지라도 1,000년 뒤에 그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돼 있을
사람은 아마 몇 사람 안 될 겁니다.
일찍이 영국 시인 John Keats(1795~1821)는 자기의 묘비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물 위에 적은 사람 여기 누어있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그는 결핵이라는 당시의 무서운 병에 걸려 항상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살면서 사랑했던 여인 Fanny Brown과 결혼도 못하고
26년의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 한 줄은 젊은 날의 나를
감동시켰고,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 있습니다.
“Beauty is truth, truth beauty."
이 한 마디가 나의 90 인생의 좌우명입니다.
“아름다운 것 참된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 그는 물 위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 한 줄의 시는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 있습니다. Keats는 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고민하는
젊은 혼을 지도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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