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새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재혼한 지도 벌써 13년이다.
며칠 전, 새언니가 우리에게 연락했다.
조카 대학 합격 축하 자리에 꼭 와 달라고 했다.
남편은 한마디만 했다.
“준비해. 우리 식구 다 가자.”
나는 축하금으로 100만 원을 넣었다.
남편은 봉투를 보더니 잠깐 멈췄다.
많다 적다 말은 안 했다.
그냥 돈을 반듯하게 펴서 흰 봉투에 다시 넣었다.
나도 안다.
적은 돈 아니다.
그래도 저 아이는 오빠가 남기고 간 하나뿐인 자식이다.
13년 동안 연락이 끊긴 적은 없는데,
늘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우리가 더 챙겼어야 했던 거 아닌가.
그 생각이 오래 갔다.
오빠가 떠났을 때 조카는 돌 지난 지 얼마 안 됐었다.
새언니는 사망진단서를 꼭 쥐고 있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그 자리에서 허리도 못 펼 만큼 울었다.
손을 붙잡고 말했다.
“정 힘들면 다시 와.”
새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이를 안은 채 큰절을 세 번 하고,
그렇게 이웃 도시로 갔다.
지금 남편과 새 삶을 시작했다.
그 뒤로 우리도 가만있지 않았다.
어떤 날은 나랑 남편만 갔고,
어떤 날은 아들까지 데리고 갔다.
갈 때마다 빈손으로는 못 갔다.
분유도 챙기고,
옷도 사고,
문제집이랑 참고서도 실었다.
트렁크가 늘 꽉 찼다.
새언니의 지금 남편은 겉으로 보기엔 순한 사람이었다.
볼 때마다 밥 먹고 가라고는 했다.
그런데 먼저 조카 얘기를 꺼내는 법은 없었다.
새언니도 가끔만 입을 열었다.
공부는 잘한다,
아이는 참 얌전하다,
그 정도였다.
말수는 적었지만,
그 안에 얼마나 버텼는지는 다 느껴졌다.
축하 자리로 가는 길에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그렇게 많이 넣어요?”
나는 아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말했다.
“사촌형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잖아. 엄마가 혼자 키웠고,
대학까지 보냈어. 쉬운 일 아니지. 네 외삼촌이 너무 일찍 갔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
운전하던 남편도 한마디 보탰다.
“도와준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 그 애는 늘 마음에 우리를 두고 있었어.
설날마다 꼭 몰래 연락해서 새해 인사했잖아. 한 번도 안 끊겼어.”
호텔 앞에 도착하니 새언니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예전보다 살이 조금 붙었고,
안색은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옆에 있던 남자가 지금 남편인 것 같았다.
우리를 보자마자 얼른 맞으러 나왔다.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그 뒤에 조카가 서 있었다.
키가 훌쩍 커 있었다.
우리 남편보다도 반 뼘은 더 커 보였다.
흰 셔츠를 입고 있던 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허리를 숙였다.
“고모, 고모부, 동생.”
그 한마디에 가슴이 먼저 내려앉았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보였다.
테이블엔 새언니 쪽 친척들이 거의 다였다.
우리 셋만 묘하게 붕 떠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내가 조용히 말했다.
“아이 아버지 쪽 고모예요.”
그랬더니 옆에서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쪽이구나. 가까운 가족인 줄 알았네.”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말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아이만 잘 자랐으면 됐다.
그 생각으로 그냥 넘겼다.
식 시작 전에 새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주변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했다.
아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했다.
말하다가 끝내 울었다.
그리고 조카 차례가 됐다.
아이는 마이크를 들고
먼저 우리 쪽을 한 번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저는 오늘 꼭 두 분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고모랑 고모부요.”
순간 홀이 조용해졌다.
새언니도 멈칫했다.
옆에 있던 남자의 웃음도 잠깐 굳었다.
조카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저는 엄마한테 맨날 물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어디 있냐고요.
엄마는 대답을 안 하고 저만 안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크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고모랑 고모부가 계속 저를 보러 왔다는 걸요.
먹을 것도 챙겨 주고, 용돈도 쥐여 주고. 고등학교 때 입시 학원비가
모자랐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몰래 울었습니다.
그때 고모부가 80만 원을 보내주셨어요. 제가 알면 부담될까 봐,
제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말했다.
“고모랑 고모부가 저한테 써주신 돈, 저는 다 적어 놨습니다.
다 합치면 187만 원입니다. 오늘 제가 대학에 붙었지만, 아직은 이 마음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은혜 절대 안 잊겠습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부모님께 하듯 고모랑 고모부께도 잘하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울었다.
남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얼른 봉투를 내밀었다.
“이 바보야. 그런 걸 왜 다 적고 있냐. 고모랑 고모부가 좋으니까 쓴 거지.
이 100만 원은 네 입학 선물이야. 대학 가서 필요한 거 사고,
공부 열심히 해.”
새언니가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울음이 차서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정말 너무 큰돈 쓰셨어요. 사실 저는 그 말도 못 했어요. 이 아이가 늘
당신들 생각했고, 자기 친아버지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걸요.
제가 재혼한 것도 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서였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품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지금 남편도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남편 어깨를 한번 두드리더니 말했다.
“형님, 솔직히 말하면 예전엔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오시면
우리 생활이 흔들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알았습니다.
끊고 싶다고 끊어지는 게 가족이 아니더라고요.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기억받는 건 복입니다. 이 돈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 일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같이 마음 쓰는 일로
생각하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함께 감당하죠.”
아까 수군거리던 친척들도 그제야 말을 바꿨다.
우리를 두고 정이 깊다고 했고,
조카를 두고 참 반듯하게 컸다고 했다.
식사 내내 조카는 우리 옆에 붙어 앉아 있었다.
반찬도 챙겨 줬고,
대학 가서 뭘 공부할 건지 말해 줬고,
나중에는 이쪽으로 대학원도 오고 싶다고 했다.
우리랑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 형 진짜 멋있다. 나도 저렇게 커야겠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낮게 말했다.
“오늘 이 돈, 정말 아깝지 않다. 오빠도 어디선가 보고 있으면
마음 놓았을 거야. 애가 반듯하게 컸잖아.
그리고 사람 마음도 잊지 않았잖아.”
나는 창밖 야경을 오래 봤다.
13년 동안 마음이 갔다.
13년 동안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게 우리만의 마음은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건 그렇더라.
멀어져도 안 끊기고,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붙들고 있으면, 그걸로 남는다.
오빠는 없지만, 그 아들은 잘 컸다.
그리고 우리를 잊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그날 밤엔 제일 크게 남았다.
(모셔온 글)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때로는 모자람도 미덕입니다 (0) | 2026.04.17 |
|---|---|
| "우리 이렇게 살아가요" (0) | 2026.04.17 |
| ♡ 남은 인생(人生) (1) | 2026.04.16 |
| ♣ 말 한마디가 남긴 울림 (0) | 2026.04.16 |
| 바닷물은 3.5%의 소금 융해로 안썩는다 (2) | 2026.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