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선한 것은 헛되지 않으며, 사랑은 반드시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김정웅 2026. 4. 3. 00:10

 

남편의 형님, 그러니까 저의 아주버님은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형님(형수님)은 재가하지 않고 세 아이와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골에서 사셨죠.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습니다. 
시골집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아궁이 앞에서 울고 있는 
형님과 그 곁을 에워싼 세 아이를 보았습니다. 

큰아이는 열다섯, 막내는 고작 여섯 살이었죠.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옥수수 빵을 손에 쥔 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버님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공사 현장에서의 사고는 
이 가정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것과 같았죠. 

형님은 하룻밤 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지만, 결코 쓰러지지않았습니다. 
낮에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밤에는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며 아이들 
학비를 마련하셨습니다. 제가 건넨 돈을 형님은 거칠게 
갈라진 손으로 다시 밀어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동서,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버텨야지. 아이들이 
하늘이 무너졌다고 느끼게 할 순 없잖아."

하지만 운명은 가혹 했습니다. 
형님마저 45세에 중병에 걸리 셨고, 친척들이 모은 돈은 수술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병상에 누워 제 손을 잡고 형님은 몇 번이고 당부하셨습니다. 

"큰애는 고등학교에 가야 하고, 둘째는 공부를 좋아해... 막내는 아직 너무 어린데... 
애들 아빠가 그랬어, 동서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다 맺지도 못한 채 형님의 눈물이 제 손등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뜨거운 눈물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반년 뒤 형님이 떠나셨고, 낡은 집 안채에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상복을 입은 열다섯 살 큰조카는 문상객들에게 이마에 
피멍이 들 정도로 절을 올렸고, 둘째는 구석에서 엄마의 
낡은 솜바지를 껴안은 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는 제 옷자락 바닥을 붙잡고 물었죠. 

"숙모, 엄마 언제 일어나? 나랑 같이 읍내 가서 
탕후루 사주기로 했는데..."

발인하던 날, 눈이 흩날렸습니다. 
큰조카가 갑자기 저와 남편 앞에 무릎을 꿇더니 
동생들을 줄 세워 절을 올렸습니다. 
.
"삼촌, 숙모... 저 이제 학교 안 다녀도 돼요. 공사판에 가서 
돈 벌어서 동생들 키울 게요."

아이의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렸고 속눈썹에는 성에가 끼어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습니다. 

"무슨 소리야! 네 아버지가 뼈가 으스러져도 너희 공부는 
시키려 하셨는데, 어디서 자퇴 소릴 해!"

시어머니는 한쪽 눈이 멀 정도로 우시며 막내를 안고 떨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의 보랏빛으로 얼어버린 얼굴을 보니 형님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 데려갑시다. 단 한 명도 남겨두지 말고."

도시에서의 삶은 상상보다 더 고단했습니다. 남편은 물류창고에서 짐을 내리고, 
저는 의류 공장에서 미싱을 돌렸습니다. 한 달 월급을 합쳐봐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죠. 

세 아이는 베란다를 개조한 좁은 방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큰애가 숙제를 하면 
둘째가 스탠드를 비춰주고, 막내는 옆에 박스를 펴놓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늘 두 명의 흐릿한 사람이 있었는데, 
막내는 그게 엄마 아빠라고 했습니다.

큰조카는 늘 자신이 짐이라고 생각했는지, 집에 오면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주말에는 몰래 폐지를 주우러 다녔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는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품에 안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숙모, 동생 새 연필 사주고 싶어서요..." 

앙상한 아이의 등을 안아주며 저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아, 숙모가 있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그래."

둘째는 밤마다 기침을 했습니다. 이불을 들춰보니 수년 전 제가 입던 낡은 스웨터를 
덮고있더군요. 이튿날 바로 시장에 가서 보름 동안 모은 돈으로 세 아이에게 
새솜점퍼를 사주었습니다. 옷을 입어본 둘째는 깃에 달린 털을 조심스레 만지며 
속삭였습니다. "고마워요 숙모. 엄마가 만들어준 것보다 더 부드러워요."

가장 마음 아픈 건 막내였습니다. 
밤마다 엄마를 찾으며 울기에 제가 품에 끼고 재우며 부모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네 아빠는 대추를 참 잘 따서 누나한테 제일 큰 걸 주곤 했단다. 
네 엄마가 짠 스웨터는 동네 애들이 다 부러 워했어." 

아이는 까만 포도알 같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숙모, 엄마 아빠는 별이 된 거예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하늘에서 우리 막내 크는 걸 다 지켜보고 계시단다."

큰 조카가 수능을 보던 해, 녀석은 뼈만 남을 정도로 말랐지만 기어코 
명문대에 합격했습니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날,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향 쪽을 향해 세 번 절을 올리고 제게 말했습니다. ,
"숙모, 학자금 대출 신청했어요.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저는 새로 지은 이불을 아이 짐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추울 때 떨지 마라. 돈 걱정은 숙모 몫이야."

둘째가 교대에 합격하던 날, 통지서를 형님의 영정 사진 앞에 붙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도 선생님이 될 수 있어. 엄마 말대로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게." 

둘째는 방학마다 과외를 해서 번 첫 돈으로 막내의 새 가방을 샀습니다. 
가방을 멘 막내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했죠. 
"우리 누나가 사준 거야!"

막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부쩍 의젓해졌습니다. 제가 야근하고 
늦게 퇴근한 날, 아이가 주방에서 국수를 삶고 있더군요. 

면은 냄비 바닥에 다 눌어붙었지만 아이는 그릇을 내밀며 웃었습니다. 
"숙모, 얼른 드세요. 계란도 넣었어요." 

그 불어 터진 국수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달콤했습니다.

작년에 큰 조카가 졸업했습니다. 대도시에서의 직장을 포기하고 고향 근처 
시청공무원이 되었죠. "숙모, 할머니랑 동생들 가까이 있고 싶어요." 

둘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매일 산길을 걸어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망울이 도시의 불빛보다 따뜻하다" 고 말합니다. 막내는 고등학생이 되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이의 작문 숙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나에게는 두 명의 엄마가 있다. 한 분은 하늘에 계시고, 
한분은 제 곁에 계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가니 마을 사람들이 저희를 에워쌌습니다. 
왕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말씀하시더군요. 

"큰애가 마을 수로를 고쳐주고, 둘째는 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했어. 막내는 

주말마다 요양원 가서 신문을 읽어준다네. 이 세 아이가 친자식보다 낫구먼!"

마당에 들어서니 큰조카는 할머니 손톱을 깎아드리고, 둘째는 이불을 말리고, 
막내는 돌탁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웃으셨습니다. 

"에미야, 다 네 덕분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 아이들이..." 

저는 고개를 저으며 벽에 걸린 형님 내외의 사진을 가리켰습니다. 
"부모님이 잘가르치신 덕분이죠. 아이들의 눈매를 보세요, 
젊은 시절 형님 내외랑 똑같잖아요."

큰조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숙모, 다음 달에 학교에 장학금을 만들려고요. 
부모님 성함을 따서 만들고 싶어요." 

둘째와 막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아이들의 눈 속에서 빛나는 광채를 보며 형님이 떠나던 그 눈 내리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이 가정이 완전히 무너진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생명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형님이 이웃집 지붕을 고쳐주며 흘린 땀, 형님이 홀로 사시는 노인들에게 
만두를 건네며 지었던 미소... 그런 일상의 선함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어제 큰조카가 사진 한장을 보내왔습니다. 
장학금 수여식 날, 세 아이가 단상 위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건국·애민 장학금' 
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형님 부부의 이름이었죠. 

사진 속 아이들은 형님이 괭이를 메고, 형님이 광주리를 들고 논길을 걷던 
그 시절의 모습처럼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묻습니다. 
"아이 셋 키우느라 머리가 하얗게 샜는데 후회하지 않느냐" 고요. 

창밖을 보니 남편은 막내의 자전거를 고치고 있고, 둘째는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고, 큰애는 할머니에게 신문을 읽어드리고 있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남는 장사는 '사랑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요. 물 한 방울을 주면 
바다가 되어 돌아오고, 씨앗 하나를 심으면 숲이 되어 돌아옵니다.

저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를 구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선함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사랑은 반드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아이들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 마당을 지나는 바람 속에서 음식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옵니다. 마치 형님 내외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동서, 고마워.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나 잘 키워줘서."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