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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이어령

김정웅 2022. 3. 30. 00:21

이어령 교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금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한 세월(歲月)과
무한(無限)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太陽)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잎이 흔들릴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生)의 욕망(慾望)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大地)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色彩)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生命)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忘却)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理由)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拒否)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파동은 같은 

질서(秩序)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