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아버지는 참 순수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잘 받아줍니다.
하지만 베푼 은혜가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에 저희 집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버지의 죽마고우 분의 아들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돈을 꾸어 달라
하시기에 아버지가 큰 돈을 빌려주시게 되었는데
몇 년 안 되어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고
그 친구분은 잠적해 버린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집은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저라면 그 친구분을 원망하며 고소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구분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본인보다 더 속상해 하셨습니다.
"당신은 왜 항상 속고만 다녀요?
지금 우리 삶도 빠듯한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친구한테 그렇게 큰돈을
빌려주었어요. 이제는 친구들과 인연 끊고 살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했습니다.
"아니야,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깐
분명 나중에 연락이 오겠지."
아버지는 끝까지 친구분을 믿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친구분이 그만 사고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을 찾은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분은 자신에게 나오는 사고 합의금을
아버지에게 꼭 전달하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친구분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이 친구야. 죽어서 이런 거 남기지 말고
살아서 전화 한 통이나 해주지."
아버지의 모습에 저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친구로 끝까지
남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 한 명의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나를 믿어 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는 것은 살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의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좋은 벗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그 많은 추억, 함께 겪은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 많은 어긋남,
마음의 격동, 우정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한 생텍쥐페리 의 말이 되새겨집니다
아울러 아버지는 94세 까지의 긴 인생 여정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우정이라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숱한 유혹과
비아냥거림을 바람처럼 맞았을 겁니다.
생각과 마음은 바람처럼 가벼워도 존재의 묵직한 의미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도록 오늘도 제가 살며 지켜야할 소중한 영역이 있음을
깨우쳐주신 아버지께 가정의 달에 새삼 감사드립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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