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우리 문화재 187

할머니가 1원에 판 참기름병이 국보…알고 보니 기와집 15채 값

1997년 국보 294호로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 1920년대 한 할머니가 나물을 캐다가 발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국보·보물로 지정된 주요 문화유산 13건의 조사 소회와 뒷이야기를 담은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을 발간했다. 13일 공개된 해당 책자에는 1원짜리 참기름병이 국보가 된 사연, 6‧25 전쟁 당시 목숨을 건 피난길에서 어두운 밤을 이용해 커다란 영정함 두 개를 실은 수레를 끌며 끝까지 지켜낸 후손의 노력, 불교미술 전공자가 사찰 문화유산의 정기조사를 맡으면서 느끼는 ‘덕업일치’의 기쁨, 딸이나 아들‧처가나 외가를 구분하지 않고 나눈 재산 상속과 분배 문서인 ‘분재기’를 통해본 사회상의 소회 등 연구자들의 재미있는 현장 이야기가 담겼다. 책에 따르면 1997년..

고물로 팔릴 뻔한 국보급 유물...'청동 팔주령'(국보 제143호).

전남 화순군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 팔주령(국보 제143호). 고물로 나온 유물을 엿장수가 도청에 전해 국보로 살아남았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제작됐으며 지름 12.3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971년 12월, 문화재연구소 조유전 학예사는 출장길에 전남도청에 들렀다가 그곳에 보관 중이던 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청동기 11점을 확인했다. 도청 관계자에게 자초지종을 확인하던 조 학예사는 하마터면 ‘국보급 유물’이 사라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해 여름 동네 주민이 집 둘레에 배수로를 파던 중 땅속에서 여러 점의 유물을 발견해 보관하다가 고물을 수집하던 엿장수에게 넘겼으나 다행히도 엿장수가 그것이 유물임을 알아보고 도청에 전해주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조 학예사 일행은 ..

고종이 하사한 ‘나전흑칠삼층장’, 130년 만에 고국 돌아왔다

- 최근 아펜젤러 증손녀가 배재학당박물관에 기증 - “안녕하세요, 저는 헨리 아펜젤러의 증손녀입니다. 조선의 왕이 우리 증조할아버지에게 선물해 귀한 가보로 내려오는 장롱을 한국에 기증하고 싶어요.” 지난해 9월 20일 서울 정동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담당 학예사 앞으로 이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발신자는 미국 델라웨어에 사는 여성 다이앤 크롬(66). 아펜젤러의 후손이라고 밝힌 그는 “어릴 때부터 늘 거실에 놓여 있어 스케치북에 그렸고, 친구들이 올 때마다 한국에서 온 선물이라고 자랑했던 가구지만, 우리 가족이 간직할 때보다 한국에 있을 때 더 빛이 날 것 같다”며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아펜젤러의 정신을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증 의사를 전했다. 고종이 미국인 선교사로 한국에 첫 서양식 학교인 배재..

KBS 진품명품...감정가 15억 원의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

- 석천 전일상 선생의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석천한유도' - KBS 1TV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 나온 조선시대 풍속화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가 역대 최고 감정가 15억 원을 기록했다. 석천한유도는 숙종∼영조대 무신이던 석천 전일상(1700∼1753)이 정자위에 기대 한가롭게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충남 유형 문화재 제127호다. 조선시대 무인의 일상을 그린 희귀한 작품인데다 인물 표현에 초상화 기법을 적용해 회화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석천(石泉)'은 무과 급제 후 전라우수사와 경상좌병사에 오른 전일상(田日祥)의 호입니다. 그는 5대에걸쳐 무관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종2품 당상 요직을 지낸 분으로 멋들어진 누각에 올라 한가로히 여름 한철을 보내는 석천이 직접 그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테라코타 사랑’ 근대 조각 선구자 권진규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는 이중섭, 박수근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역경을 겪었다. 생전에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와 함께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권진규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고, 사후에 독창적 예술세계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재조명됐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1945년 함흥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47년 이쾌대가 세운 성북회화연구소에 들어가 이쾌대의 지도 아래 미술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9년 도쿄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학과에 입학했고, 조각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일본 유학 시절 권진규는 석고, 브론즈, 석조 등 다양한 재료를 탐색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귀국 후 ‘한국 정통성에 대한 현대적 계승’을 고민하며..

김기창 화백의 아내 '박래현' 화가의 작품 감상

- 삶과 예술의 뜨거운 동반자 부부 화가 - ◇김기창과 박래현의 만남 1943년 김기창이 30세 되던 해, 그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재능 있고 인격이 훌륭한 박래현 (1920~1976)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박래현이 일본여자미술학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고, 잠시 서울에 머물 때였다.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박래현은 학교 선생이었던 아는 언니의 가정방문을 따라가서, 방문 학생의 오빠인 김기창을 만나 처음 필담(筆談)을 나누었다. 이들은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1946년 결혼식을 올렸다. 박래현의 부모님은 결혼을 결사반대하여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김기창은 아예 부모님이 안 계셨으니, 친구들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세간에서는 장애 화가와 엘리트 여성의 만남을 대서특필했다. 여기서..

조선 군관의 편지 보물된다..."한글 널리 보급된 실상 담겨"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낸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간다.” 세종(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1490년대 함경도 변방에서 군관으로 일하던 남편이 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부칠 수 있었을까.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사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편지는 조선 초기 군관이었던 나신걸(1461~1524)이 부인 신창맹 씨에게 한글로 써 보낸 편지 글 2장이다.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 있는 신 씨의 묘를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관 속 신 씨의 머리맡에 편지가 여러 번 접힌 상태로 있었다. 편지를 넣은 보관함은 없었다. 아래, 위, 좌우 여백 없이 빼곡..

미국에서 조선 말기 지성사 보여주는 '유교책판' 61점 환수

“주서(朱書·주희의 편지)를 읽는 데 도움되는 것이 마치 길을 인도하며 횃불을 밝혀 준 것처럼 편리할 뿐만이 아니다.” 퇴계 이황(1501~1570)이 주자학을 만든 송나라 주희의 편지를 해석한 내용이 담긴 ‘주서강록간보’의 한 구절이다. 주서강록간보는 이황의 제자들이 먼저 정리한 ‘주자서절요강록’을 조선후기 안동 출신 학자 이재(1687~1730)가 수정·보완한 것으로 1785년 호계서원에서 6권 3책으로 간행됐지만, 지금까지 인쇄본만 전해졌다. 18세기 조선 후기 지성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주서강록간보의 유교책판 일부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주서강록간보을 비롯해 조선 후기 안동 등 영남 지역에서 판각됐지만 인쇄본만 남아있던 유교책판 총 61점을 10월 미국에서 국내로 들여와 ..

‘탈춤’, 韓 22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탈을 쓰고 추는 전통 무용인 우리나라의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30일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의 탈춤’(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한국의 탈춤’은 우리나라의 22번째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년), 강릉 단오제 (2005년),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2009년),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년),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 문화(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