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꺾어가지도 파가지도 않으니까~~.
십 년 전쯤이었다. 동네 공원에서 내가 형님같이 모시는 법조 선배를 만났었다.
당시 그는 지금의 내 나이인 칠십대 중반이었다. 그는 육십대 중반이 되자
단호하게 변호사 사무실을 접고 백수 생활로 들어갔다.
“요즈음은 어떻게 소일하고 계십니까?” 내가 물었다.
“요즈음 내 생활은 산책을 하고 논어에서 공자의 뜻을 살펴보고 있어. 라즈니쉬의
노자 해석도 읽고 있지. 기억력을 잃지 않으려고 누우면 신라까지는 안되고
조선의 왕들을 암기해 보기도 해. 집에 있으면 창문으로 공원의
숲이 보여. 참 좋은 동네야. 깊은 산중에 있는 것 같아.”
나는 그에게서 노년의 유유자적한 삶을 배웠다.
“또래의 다른 친구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 선배 또래의 삶이 나의 미래다.
“대학 동기중 10%만 서울에 살아. 나머지는 지방에 가서 살지. 회사 사장이나
임원을 했던 친구들도 퇴직한지 오래 되니까 이제 아파트를 역모기지해서
그 돈으로 살고 있어. 연금을 받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 돈으로 살기가 빡빡하지.”
늙으면 가난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살아보시니까 여러 사람들의 삶의 굴곡도 많이 보셨죠?”
그는 한때 권력의 실세이기도 했다.
“봤지.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친구는 검사 시절부터 행운이 따랐어. 장관도 해보고
비서실장을 하면서 대통령의 권력 맛도 봤지. 그런데 행운뒤에는 불행이 따라
붙는 것 같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직권남용으로 감옥에 갔다가 나왔는데
지금 부인이 아프다고 그래. 병원에서 간병을 하고 있더라구. 운이란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러는 것 같아.
법원장을 하던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죽었어. 한번 들어볼래?”
“어땠길래요?”
“대학 때 워낙 가난했어. 검게 물들인 미군 군복을 입고 졸업 때까지 버텼지.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고 법원장까지 했어. 변호사로 나와서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는
어촌계 사건을 맡았지. 성공하면 반반 먹기로 했대. 일심 이심에서 승소하고
약속대로 성공보수를 받았지. 인생 돈 걱정이 없어진 거야. 그런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졌어. 어민들이 몰려와 돈을 돌려달라고 행패를 부렸어.
어떻게 된 건지 다시 가난해져서 반지하방 생활을 하다가 죽었어.”
하나님은, 파는 물건에 원플러스 원이 있듯이, 그렇게 사람에게
복을 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사람 운이란 모르는 거야. 늙어서 뒤늦게 부자가 된 친구도 있으니까. 한 친구는
여행을 하면서 노르웨이 북쪽을 돌아다녔는데 사슴뿔을 울타리 버팀목으로
죽 꽂아놓은 게 보이더라는 거야. 그게 다 녹용이잖아? 그걸 수입해서
부자가 된 거지. 요즈음 턱시도 입고 주위에 밥도 잘 사더라구.”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요?”
내가 선배에게 물어 보았다.
“성경의 욥기에 보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잖아?
모든 게 섭리인 것 같아.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거지 뭐.
꽃도 잘난 꽃보다 못난 꽃에 평화가 있어. 누가 꺾어가지도 파가지도 않으니까.
아니면 아예 꽃을 하지 말고 잎이어도 돼. 얼마 전 필리핀 처남 집에 갔다가
거기 사는 필리핀 사람들 모습을 봤어. 없어도 내일 걱정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더라구. 한 달에 몇십만 원을 가지고도 만족하면서.”
기차가 역에 가까워지면 속도를 줄이듯 그 선배도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고
적절하게 인생의 브레이크를 밟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때늦게
깨달음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제는 활자가 아니라 경험과
지혜로 사물의 흐름을 이해해야 할 때가 아닐까.
나의 글빵 제과점을 찾는 분 중에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졌는데 그만 가지지 못한 것 같이 느끼는 것 같다.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가지려 애쓰지만 상황이 역부족이라
고통이 심하다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남들의 겉옷만 보고 그들이 행복한 걸로 착각했음을~~
그리고 삶에 대한 기준, 행복에 대한 기준을,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을~~
-엄상익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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