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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死六臣) 중 유일하게 핏줄을 이어오고 있는 박팽년 가문의 이야기

김정웅 2025. 10. 13. 00:06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낸 사건을 계유정난(1453)이라고 한다. 
이 계유정난이 일어난지 3년 후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역사에서는 '사육신'이라 부른다. 

세조는 사육신들의 아버지, 형제및 그 자손 등 남자는 모두 죽여 씨를 말렸고 

여자는 노비로 보냈다. 이때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는 임신 중이라고 

조정에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죽이고 

여자 아이면 노비로 보내라"고 명령이 내려 갔다. 

마침 그집 여자 종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여 둘째 며느리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바꾸기로 했다.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는 대구감영 관노로 배치되어 친정이 
있는 달성군 하빈면 묘리를 내왕하며 노비생활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 李氏는 산달이 되어 사내 아이를 출산했는데 박비(朴婢)라고 이름 지었다. 
노비(奴婢)에서 奴는 남자종을 婢는 여자종을 뜻한다.

"비(婢:계집종비)"는 그 이름에서 여자란 의미를 풍긴다. 사내애를 여자애로 가장하기 
위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던 박팽년 가문의 여자종은 
여자 아이를 출산하여 서로 바꿔서 길렀다. (연려실기술)

세월이 흘러 박비가 17세가 되던 해 이극균이(박비의 이모부, 아버지 박순과 동서)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했다가 처가가 있는 하빈면 묘리를 방문했는데 박팽년의 핏줄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박비(朴婢)는 외할아버지가 키우고 있었다. 이극균은 조카에게 
자수를 권유했고 박비가 조정에 올라가서 자수했다. 

보고를 받은 성종은 死六臣의 핏줄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성종의 입장에서는 
사육신 사건은 할아버지 세조 때의 일이라 너그러이 용서하고 
이름도 박일산(朴壹珊)으로 직접 지어줬다. 

"일산(壹珊)"은 "하나 밖에 없는 보석"이란 뜻으로 사육신들의 남자 핏줄들은 모두 죽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보석같이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노비 신분도 면하게 했다. 
박일산은 외가집 재산을 물려 받아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터를 잡았다.
이 묘리(妙里)를 사람들이 "묫골"이라고 부르는데 박일산은 
묫골 朴氏의 입향조가 되었다. 

원래 박팽년은 순천 박씨로 충청도 사람인데 둘째 며느리 李씨가 달성군 하빈면 사람이어서 

그 후손들은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기적적으로  핏줄을 이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박일산의 모친 성주 이씨는 평생 수절하며 관노로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묘리에서는 처음에 박팽년만 제사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박일산의 손자 
박계창이 고조부 박팽년의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다른 
사육신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후에는 후손들이 모두 끊어진 다른 사육신들의 제사도 함께 지내고 있다. 
사육신들을 육신사(六臣祠)에 모시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 우리가 알만한 사람은 
김영삼 정부때 국회의장을 지낸 9선 의원 박준규씨와 이병철 삼성 창업주 부인 
박두을 여사 등이 박팽년의 후손이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