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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Quo Vadis)

김정웅 2026. 6. 15. 00:05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 주연의 쿼바디스

 

‘쿼바디스(Quo Vadis)’는 라틴어 표현으로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본래 그리스도 및 사도 베드로에게 관계되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나타나는 말이지만, 

이 표현은 단순한 길 묻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 선택, 운명에 관한 질문”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또 이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역사·문학· 종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의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846~1916)가 ‘쿼바디스
(Quo Vadis)’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이래 특히 유명해졌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로마의 청년 귀족인 비니키우스가 폭군 네로의 인질인 리기아에게 
음탕한 생각을 품고 연애를 하다가 리기아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개심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까지의 경위가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서력기원전 1세기의 로마에서 가혹한 박해를 이겨 낸 
그리스도 교의 승리에 있는데, 

여주인공 리기아를 슬라브족의 왕녀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망국의 비운에 젖은 
조국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는데 정확한 자료와 상상력을 구사해서 
네로 시대의 로마의 상황을 생생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뒤의 수 세기 동안은 그리스도 교도에게 있어서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의 문화는 찬란했고, 황제를 둘러싼 귀족 등은 그들의 광대한 
속령(屬領)으로부터 공납과 노예의 노동에 의존해서 향락적인 
생활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궁성이나 귀족의 저택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광란 같은 향연이 벌어졌고, 
경기장(콜로세움)에서는포로나 노예의 생명을 빼앗는 피투성이의 경기가 
열광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계급이 호사 방탕한 퇴폐적인 생활을 누리는 반면에,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빈민이나 노예들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공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이국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민중 속에 침투하는 것을 
기뻐할 리 없었고, 호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은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에도 잘 묘사되어 있지만 
그 탄압은 어떤 종교 탄압보다도 가장 야만적인 것이었습니다. 

인내심이 강한 그리스도 교도들도 끝내 지쳐서 계속해서 
로마에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사람인 베드로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최후까지 버텼으나 주위 사람들의 끈덕진 권유에 
승복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밤중에 로마를 떠나서 새벽녘에 ‘아피안 가도’를 
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둥근 해가 솟으며 그 눈 부신 빛 속에서 베드로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 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귀에는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렸습니다. 
"네가 내 백성을 버린다면 나는 다시 한 번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를 지고 못 박히리라.“

그러자, 잠시 엎드려 있던 베드로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두려움 때문에 
사명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께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절정이며,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런 자그마한 행위가 그리스도교가 유럽을 지배하게 한 계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역사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이란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의 
수수께끼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폭군 네로가 자살하는 대목에서 끝납니다.
아, 네로는 선풍처럼, 폭풍우처럼, 화재처럼, 전쟁처럼, 역병처럼 죽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예배하는 성당은 오늘도 바티칸을 정상으로 로마와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쿼바디스’는 단순히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 질문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걷는 길은 옳은 길인가?
두려움 앞에서 나는 도망치고 있는가, 
아니면 마주하고 있는가?
바로 그 질문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 ‘쿼바디스’입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를 넘어 인간의 양심과 책임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책임에서
관계에서
현실에서
고통에서
늙어감과 외로움에서…,

그러나 “쿼바디스”는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은 결국, 삶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쿼바디스(Quo Vadis)’가 오늘까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