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
[少時猶不憂生計, 老後誰能惜酒錢.
共把十千沽一斗, 相看七十欠三年.
閑征雅令窮經史, 醉聽淸吟勝管弦.
更待菊黃家온熟, 共君一醉一陶然.]
"젊어서도 생계 걱정 안 했거늘, 늙어서 그 누가 술값을 아끼랴.
만 냥 들여 산 술 한 말, 마주 보는 우리 나이 일흔에서 삼년 모자라네.
한가로이 술잔 돌리며 고전을 논하는데, 취해서 듣는 맑은 읊조림이 풍악보다 좋구나.
국화 피고 우리집 술이 익으면, 다시금 그대와 함께 느긋하게 취해 보세."
백거이와 유우석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에 올랐지만 중당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관직 생활은 부침이 극심했다. 수차례 중앙과 지방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 문학과 삶의 지향에서 의기투합했고 자주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고희를 눈앞에 둔 나이, 마침 둘은 낙양(洛陽)의 태자궁에서 같이 근무할 기회를 맞는다.
술값 따질 것 없이 두 사람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술자리.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마음으로만 교류했던 두 지기는 격정의 젊음을 보내며 파란만장한 신고(辛苦)를
치른 후에야 마침내 서로를 보듬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권주의 유희로
상대에게 술을 강권하기도 하고 불콰해진 채 목청을 돋우어 시도 읊조린다.
경전과 역사를 논하는 것은 사대부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도락(道樂),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이 재미를 능가하진 못하리라.
이런 자리가 동갑내기 친구 사이엔 다시없는 즐거움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또
지난날의 광영과 열정을 반추해 보는 아련한 회한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 회한을 애써 다독이려는 심사일까. 시인은 ‘국화 피고 우리집 술이
익으면, 다시금 느긋하게 취하자’는 훈훈한 다짐을 잊지 않는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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