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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원시(所願詩) /이어령 시

김정웅 2023. 1. 1. 00:01

이어령 선생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6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의
나락입니다.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 새해 소원시 /이어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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