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크리스 마스 선물'등 유명한 단편 소설 작가인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였습니다.
오 헨리는 의사가 되고자 했던 약사 아버지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그는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숙부의 손에서 자란 그는 공부를 할머니가 가르쳤습니다.
공부의 주된 내용은 자유로운 글쓰기 였습니다.
그는 안해본 일이 없을 만큼 닥치는 데로 일을 했습니다.
27살에 7살 연하의 부인과 결혼해서 너무도
열심히 공부해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그것은 부인의 폐결핵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계산 실수로 인해 그는 법원에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결심 공판전에 그는 별로 재판에 이로울 것이
없음을 알고 도망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부인의 위급 소식을 듣게된 그는 부인을
만나러 가다 경찰에 체포되게 됩니다.
결국은 5년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약사 자격이 있었던 그는 교도소에서 약사로 지내다
각양각색의 범죄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글쓰기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옥은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모티브 였습니다.
그 유명한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 소설도 이때 였습니다.
수 많은 단편들을 쓰면서 딸에게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필명을 쓰게 되었는데 바로 감옥의
간수장 이름이 '오 헨리' 였습니다.
이 간수장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만나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특히 경찰관과 찬송가등 범죄에 연루된 소설도 이러한
경험에 의해 생겨난 작품 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그는 모범수로
나온 후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거의 하루 한편의
단편 소설을 쓰다시피 했습니다.
수 많은 단편소설은 그가 감옥 생활에 한숨과 비관만
하고 있었다면 불가능 했을겁니다.
가장 어려울때 일수록 그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그가 설립했던 애플사에서 어이없게 쫓겨 났습니다.
그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노에 차 있을수도 있지만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려 위기를 만회 했습니다.
마침내 애플사로 다시 복귀 했을때 자신이 쫒겨나 차렸던
두 회사는 스마트폰을 탄생 시키는데 크나큰
역활을 하였습니다.
가장 암울했던 시절이 가장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 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가 하는 마음과
어떤 정신을 갖고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희망의 마음가짐을 갖는 자에게 반드시 희망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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