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샛 문

김정웅 2022. 11. 20. 10:13

 

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대문이 있고 뒤쪽이나 
옆모퉁이에 샛문이 있는 집이 많았다.

우리 집에도 뒤뜰 장독대 옆에 작은 샛문이 하나 있어 이곳을 
통해 대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작은집에 가곤했다.

이 샛문은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마실을 가거나 곗방에 갈 때,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속아 준 것 같다. ​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 넘실거리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삭막하였지만, 넓은 마당은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나락베눌로 꽉 차 있었다.

하늘 높이 쌓아 놓은 나락베눌은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는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한 어른들이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여 나락을 마당에 쌓아 놓고 
가마니로 덮어놓았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 보았더니 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 있었다.

원래 암놈은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수놈은 허스키 목소리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목을 
길게 빼고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도 무서워서 우리집에는 얼씬도 못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렵은 식량이 귀하던 때라 도둑이 성해 개나 
때까우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날 밤 도둑이 든 것이다. 

때까우가 도둑놈 바짓가랑이를 물자 낫으로 목을 후려치고는 
나락을 퍼담아 가지고 간 것이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몹시 불고 좀 추웠다.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강아지마냥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발자국은 고샅을 지나 맨 꼭대기 오두막 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되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오시는 것이었다.

평소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목덜미를잡고 끌어내어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높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아니면 경찰서로 끌고 가서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형무소라도 보냈음 

직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오시며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소견이지만 여름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 놓은 나락을 훔쳐 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아버지의 위엄이 설 것 같았는데…….,

그런데 미지근하고 우유부단한 행동이 두고두고 
못마땅 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생각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뜻을 
조금이나마 헤어릴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뜻도….

경행록에도 “남에게 원수를 맺게 되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고 했고,

제갈공명도 죽으면서 “적을 너무 악랄하게 죽여 내가 천벌을 
받게 되는구나”라고 후회하며,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 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날 이후 H씨는 평생토록 원망과 원한 대신에 나락 한 가마니 
빚을 지고 아버지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궃은 일 마다 않고 해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세상 일은 꼭 생각같이 되는 것이 아니여.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단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 주지 못하고 몰아세우고 
따지는 말은 삼가야하고,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조금 남겨 놓아야 한다”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샛문과 같은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동양화에서 여백은 무한한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여백은 보는 이의 
몫으로 구름. 새. 꽃, 나아가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다.

우리는 수묵화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은 즐길 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비우지 못하고 항상 위만 쳐다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무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고, 여유를 가진 삶이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타인이 접하기가 
어렵고 경계의 대상이 된다.

공자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남의 옳고 
그른 것을 살피다 보면 친구가 남아있지 않는다’고했다.

때로는 약간 엉성하고 빈틈이 있어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동화도 되지 않을까?

아내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미처 못 채운 

와이셔츠 단추도 채워 줄 수 있도록 빈틈을 남겨 

놓는것도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