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 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을 아십시까?
매년 11월11일 오전11시, 소란한 도시의 소음을 뚫고 사이렌이 울리면 세계로 흩어진
한국전쟁 참전 21개 국가는, 모두 이 시각에 맞춰 부산을 향해 1분간
엄숙히 묵념하는 추도의 시간을 갖는 답니다.
이름도 잘 모르고 지구의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지 조차도 모르면서 북한 공산당의
불법 침공으로 비롯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를 돕다가 홀연히
전사한 영령들을 위한 추모행사입니다.
이름 붙여 “턴 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 이라고 한답니다.
이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산화한, 그리하여 유해가 한국땅(부산 대연동 유엔기념
공원묘지)에 안장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으로
열리는 너무나 뜻깊고 소중한 행사인 것입니다.
이곳 [유엔기념 공원 묘지]에는 터키 장병 462명을 비롯하여 영국 885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델란드 117명, 미국 36명, 프랑스 44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노르웨이 1명 등 11개국 참전용사 23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극동의 작은 나라의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된 고귀한 생명이 그만큼 많다는 것과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가가 얼마만큼 비싼지를 깨닫게 하는 시금석이 되는 장소입니다.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은 2007년, 6·25전쟁 캐나다 참전용사인
빈센트 커트니 씨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답니다.
이 행사에 앞서 또 하나 익혀야 할것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병사가 종전이 되어
본국으로 귀환하여 여생을 보내시다가 별세하자 유해가 한국으로 되 돌아와
유엔 묘지 공원에 안장된 행사도 여러 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015년 5월, 프랑스인 고(故) 레몽 조셉 베나르 (Raymond Joseph Benard) 씨를 필두로,
2016년 5월 12일 네델란드 참전 용사 고(故) 니콜라스 프란스 베설스 씨, 2016년
10월27일 프랑스 참전 용사 (故)앙드레 벨라벨 씨 등 세 분이나 되신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부흥한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감격스러워 했으며,
사후에는 전우가 묻혀있는 한국 땅에 묻히길 소망하며
유언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5년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는 영국의 참전용사 ‘로버트 맥코터’씨의 유해가
유엔묘지에 안장됐었답니다.
맥코터 씨는 1948년 17세의 나이에 입대하여 1950년 8월부터 1952년 8월까지
한국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대 후 2001년 영국에서 사망한 맥코터 씨는 생전에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고, 한국에 남겨진 전우들을 그리워하며 "같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었답니다.
그가 사망한지 14년 만에 생전에 그리워했던 한국땅에서 영면하게 된 것이지요.
2015년 맥코터 씨의 아들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에 부친의 유해와 함께 방한하여 처음으로 안장식을 거행했었답니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기념묘지]는 1955년 유엔 총회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 묘지입니다.
그리고 유엔군 참전용사 사후 개별안장이 진행된 것은 모두 다섯 번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신원불상으로 유엔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신원이 재확인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영령도 있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DPAA)의 성과였답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외국에서 전사한 군인은 반드시 고국으로 모셔 안장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년 9월27일에는 네델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가
역시 유엔기념 공원묘지에 안장됐답니다.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른 것이었답니다.
유엔 기념 공원 묘지에는 거의가 일반 병사들이 묻혀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지만.
거기에 유일한 장군이 안장돼 있음도 이채로운 사실에 속합니다.
전례로 보면 대개 장성이 전사하면 본국으로 송환하여 장례식을 치르기 때문인데.
유일하게 유엔 기념 공원에 묻힌 이의 이름은 고(故) 리차드 위트컴
(Richard S. Whitcomb. 1894~1982)장군이랍니다.
위트컴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미 군수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1953년 부산역
대화재로 부산역에서 국제시장 일대 천막과 목조건물이 전소되자 미군
군수물자를 대거 풀어 이재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본국의
청문회에까지 소환되는 곤욕을 치른 분이라합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