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운명을 바꾼 "개똥벌레" 이야기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하신 전도봉 장군의 자서전
“그러나 해병대는 영원하다.”를 읽어보았다.
자서전 중에 장군의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본다.
장군으로서 권위를 벗어놓고 사병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열창한 “개똥벌레” 노래 이야기다.
1993년 국군의 날 계룡대에서 “육, 해, 공, 해병” 전군 노래자랑
대회가 있었다. 각 군에서 장군 한 사람이
부르게 되어 있었다.
상사로부터 노래 잘하는 A와 B 장군 두 사람이 연락되지 않는다며
전 장군이 나가야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내키지 않아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함에도 재차, 삼차
강력한 명령이 내려왔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는 명령을 먹고 산다.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었다.
잡기에 능하지 않아 부를 곡목은 무얼 할까? 장군다운 노래가
있을까? 고심하다가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을 준비했다.
기왕에 부르려면 잘 불러 보려고 차남과 함께
노래방에서 연습까지도 했다.
노래자랑 대회 시작 바로 직전. 장군 참가자들이 대기하는
곳에 갔다. 해군 제독이 무슨 곡을 준비했는지?
묻기에 “머나먼 고향”이라 했다.
대뜸 자신이 부를 곡이라며 다른 곡을 준비하라고
단호히 말했다.
난감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대에 올랐다. 엉겁결에 평소
차남과 함께 즐겨 불렀던 '개똥벌레'를 불렀다.
예상외로 해병대원들이 신이 나서 특유의 해병 박수로
합창하며 분위기를 한껏 살려 주었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대기하던 육해공 장군들이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이유는 장군답게 고상하고 품격있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하필 장군이 점잖지 못하게 노래가 '개똥벌레'라니?
장군들 개망신을 시켰다며 졸병들하고 할 짓이
아니라며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장군들만 보는 지휘참고 자료집에 온통 전 장군에
대한 비난과 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최후 방편으로 KBS 담당 PD를 찾아가서 편집할 때
삭제해 달라고 사정했다. PD는 장관이 사정해도
안 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별 묘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장군으로서는 이미 끝장난
사람이다. 마음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일주일 뒤 국방부장관 주관 각군참모총장 부부동반 만찬이 열렸다.
개똥벌레를 부른 해병대 장군이 시종일관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대 성악가 출신 장관 사모님이 극찬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해병대 장군이 노래도 잘 부르고 병사들과 격의 없이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은 문민정부에 가장 적합한 장군의 모습이었다는 칭찬도 있었다.
그해 10월 말 준장에서 소장 진급자로 선발되었다. '개똥벌레' 노래가
장군의 운명을 바꿨다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개똥벌레 노래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저항 곡으로 분류되어 금지되었다.
하지만 금지곡 "개똥벌레"를 부른 장군에게 행운의 노래가 되었다.
개똥 하면 서민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개똥은 농어촌 출신에게는 찐한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장군은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 몽돌해변 출신이다.
그러나 개똥 같은 서민 품성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폼 잡는 게 장군이 아니다" 라고 장군을 질타하는 말이 회자 되고 있다.
사람이 살면 몇백 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이나마 사병들과 함께 둥글둥글
격의 없이 잘 어울리는 전 장군의 마음가짐이 존경스럽다.
해병대에서 아버지는 신현준 장군, 어머니는 김성은 장군,
큰형님은 전도봉 장군으로 통했다.
지.덕.용(智.德.勇)의 삼위일체를 갖춘 장군의 서민적인
삶의 일부를 조명해 보았다.
(모셔온 글)